“청년 암, 젊어서 더 힘듭니다”

반기웅 기자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센터장. 이석우 기자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센터장. 이석우 기자

젊은 암생존자는 비주류다. 전체 암생존자의 3%도 안 된다. 그러니 잘 보이지 않는다. 조주희 교수(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센터장)는 젊은이의 ‘암’을 공론장에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젊은 암생존자를 철인 3종 경기에 빗대 설명한다. “인생이 철인 3종경기라면 20대는 이제 출발선에 선 나이죠. 이때 암진단을 받는다면 양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레이스에 나가는 거예요. 레이스 내내 무거운 짐이 괴롭힐 겁니다. 60대는 마지막 달리기만 남은 시기예요. 상대적으로 짐의 무게가 가볍죠.” 조 교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이 젊은 암생존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4월 26일 삼성서울병원 인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암에 걸리는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2030의 암 발병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다만 급증하는 수준은 아니다. 다른 연령대 암발병률은 줄어드는 데 반해 2030은 늘다 보니 눈에 띈다.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소규모 집단이다. 환자수가 적다 보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부도 그렇고 학계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야 국내 최초로 청년 암을 주제로 한 논문이 나왔을 정도다.”

-젊은 암생존자, 생소하게 느껴진다.

“젊은 지인의 암 발병 소식을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때 아는 척을 해야 하는 게 맞을까. 배려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를 것이다. 당연하다. 우리는 배운 적이 없으니까. ‘차별하면 안 된다’, ‘편견 갖지 말라’는 얘기만 들었지 정작 일상에서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운 적이 없다. 게다가 젊은 암생존자는 우리 주변에 더 잘 안 보인다. 왜? 그들이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암밍아웃’ 하면 차별을 받는다. 실제로 학업, 취업, 복직, 결혼, 육아 모든 곳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그래서 젊은 암생존자들은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든다.”

-숨은 젊은 암생존자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20세에 암진단을 받으면 60년 이상을 암생존자로 살아야 한다. 인생의 주요 이벤트를 암과 함께 치러야 하는 것이다. 당장 대학 입시부터 꼬인다. 치료가 중하지 대학이 중요한가. 그런데 한국사회는 도미노다. 대입에 실패하면 취업이 어렵다. 결혼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 인력이다. 정상적인 트랙으로 다시 올라올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실제로 암 경험이 청년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사실 젊은 암생존자들이 치료 이후 어떤 삶을 사는지. 젊은 암생존자들이 어떤 직업을 갖는지. 학업 단절은 얼마나 겪는지. 지방과 서울의 차이는 있는지. 집안 환경에 따라 받는 영향이 다른지.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의사들도 알 수 없다. 기존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현상 파악도 하지 못한다. 다만 암생존자들과 접촉하는 의사들이 개별 진료를 통해 현실을 짐작할 뿐이다. 학력과 경력이 단절된 젊은 암생존자가 주로 몰리는 업종은 빵집이나 카페다. 젊은 암생존자에 대한 체계적인 추적 연구가 필요한데 정부 지원 연구 과제로 채택이 잘 안 된다. 젊은 암생존자 수가 적다 보니 젊은 암을 주제로 한 연구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어떻게 도와야 할까.

“젊은 암생존자니까 다 도와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암치료는 3년에서 4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인이라면 정부가 암생존자의 일자리를 지켜줄 필요가 있다. 방법은 여러가지다. 국가보조금을 기업에 지원하는 방식도 있을 테고. 암종과 치료 과정에 따라 직장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제각각일 텐데 맞춤형 지원을 하려면 먼저 정밀한 평가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이 환자분이 원래 하던 일을 다시 하려면 이 정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고 진단하고 그 진단을 기준으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암생존자의 사회적 안전망이 두터워질 것이다.”

-여전히 암에 대한 편견이 심한가. 젊은 암생존자 가운데는 사회의 시선이 치료보다 더 힘들다는 이들도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암환자가 가져온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부정탄다고. 모두 ‘나는 차별하지 않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젊은 암생존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암을 겪은 사람은 일하는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라는 편견이다. 암생존자라고 해서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편견이 사라지지 않을까. ‘과로’를 권하는 한국 노동환경 때문이다. 마음 놓고 일을 더 시켜야 하는데 암생존자에게는 업무 지시가 껄끄럽다. 그래서 암생존자에게 ‘일 못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고 채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직원이 암에 걸렸다고 하면 사실상 해고를 하는 회사도 있다.

“요즘에는 ‘당신 해고야’ 이렇게 하지는 못한다. 대신 해고를 유도한다. 할 수 없는 일을 시키고 힘든 업무를 주는 식이다. 이러면 일과 치료를 함께해야 하는 환자가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일본은 암생존자가 치료 이후 6개월 동안은 본인의 근무시간을 스스로 정하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 회사와 협의없이 노동자가 원하는 근무시간을 통보하면 된다. 우리는 현행 육아휴직 대체인력 지원사업처럼 암치료 휴직 대체인력 채용에도 정부 지원금을 주면 어떨까. 이렇게 해도 대상자가 적기 때문에 육아휴직 지원사업보다 예산이 덜 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적은 예산으로 큰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이다. 검토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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