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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숏 도발’에 드러난 불편한 진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발사체의 발사 장면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발사훈련에 대해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가 동원된 화력타격훈련이었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발사체의 발사 장면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발사훈련에 대해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가 동원된 화력타격훈련이었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미, 변화 요구하며 ‘판’ 벌인 북에
호전적 언어로 위기 키우지 않고
협상 의지 밝힌 건 다행이지만
위기 관리 못한 채 모면만 했던
2년 전 실수 되풀이할까 걱정

‘날’을 기막히게 잡았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두 발 발사한 지난 9일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핵 조율을 위해 방한한 날이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평안북도 구성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projectiles) 2발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고 확인했다. 추정거리는 각각 420㎞와 270㎞로 정확하게 한반도 남측을 겨냥한 무기 실험이었다.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신형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포함된 복수의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지 닷새 만이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지난 4일은 동부전선 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 훈련이었고, 9일엔 서부전선 방어부대들의 화력 훈련이었다. 동과 서를 오가며 요란하게 판을 벌인 셈이다.

미국의 반응을 보면, 한국과 동떨어진 속셈이 여실히 드러났다. 미·중 무역협상의 막바지 고비를 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북한의 발사체는 더 작은(smaller), 단거리(short) 미사일이었다”면서도 “우리는 지금,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누구도 행복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털어놓은 첫 반응이었다.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나에게 한 (비핵화) 약속을 깨지 않기를 원한다. 협상은 타결될 것!”이라고 했던 1차 발사의 반응보다 다소 심각성을 더했지만 시급성은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의 잇단 도발의 목적은 분명하다. 북한은 올해 말까지 기한을 설정해놓고 미국이 셈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안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안을 받으라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미·북) 관계는 계속된다. 나는 그들이 협상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짧은 발언이 현 상황을 말해준다.

폼페이오의 두 메시지 ‘쇼트와 롱’
북한 발사체가 길어지면
비핵화 협상은 짧아질 거란 말
결국 동맹국 위험보다 ‘미국 안전’

미국의 속셈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5일 미국 방송과의 일련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1차 도발에 대해 내놓은 반응에 담겨 있다. 그가 밝힌 입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의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인지는 분명치 않았던 시점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요한 것은 미국을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다”라는 말을 앞세웠다. 두 번째는 “비핵화는 머나먼 길이 되겠지만,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이룩하겠다”고 다짐했다. 2차 발사에 트럼프가 말한 ‘더 작고, 단거리’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노이 북·미 회담에 참석했던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은 지난 8일 CBS방송 인터뷰에서 보다 분명히 선을 그었다. “발사체가 무엇이건 매우 작은(very minor) 것이고, 일본이나 괌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잇단 화력 훈련은 북한과 미국, 한국 3자가 직면한 ‘불편한 삼각관계’의 내면을 새삼 일깨웠다. 4일과 9일 북한의 잇단 도발 소식을 접한 미국의 반응은 ‘숏(short)’이라는 단어로 정리된다. 미국에 중요한 건 미사일 사거리인 것이며, 달리 말하면 미국만 안전하면 북한과의 협상에 여유를 두겠다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미 언론 앞에서 미국민의 우려를 먼저 해소하려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화염과 분노’ ‘북한의 완전한 파괴’ 등 호전적 발언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는 대신, 협상 의지를 거듭 확인한 점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미국의 애매한 입장이 “ICBM만 아니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 당도할 정도로 미사일 사거리가 충분히 길지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위반을 빌미로 추가 제재를 가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별다른 복안 없이 북한의 도발을 무시하다가는 결국 북한의 대본(playbook)대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미국은 불과 2년 전 비슷한 실수를 했다. 북·미가 여전히 협상을 통한 타협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협상을 이어나가는 것과 선을 긋는 것은 다른 문제다. 위기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잠시 ‘모면’하는 데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을 시험발사하자 그 능력에 의문을 거듭 표했지만, 불과 4개월 뒤 북한이 재차 ICBM 시험발사를 하자 그때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번엔 위기를 모면하는 기간이 닷새에 불과했다. 현재의 무대책, 무행동 역시 다음 도발 때까지만 유효하다.

2018년 이후 4차례의 북·중, 3차례의 남북, 2차례의 북·미, 1차례의 북·러 정상회담이 진행되면서 협상에 의한 해법을 추구해온 동력은 ‘쌍중단’이었다. 북한 역시 자국 방위를 위해 신형무기를 개발, 실험할 수 있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은 곤란하다.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의 명백한 위반인 동시에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모라토리엄의 위반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의 희망을 내놓았던 대화탁자는 지난해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의 연합훈련 중단을 전제로 마련됐다. 북한이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깼다는 것은 그 동력을 끄겠다는 시위에 다름 아니다. 북한은 지난 3일 종료된 한·미 공군의 연합편대종합훈련이 종래의 ‘맥스 선더(Max Thunder)’에 비해 규모가 축소됐더라도 “우리 군대의 대응이 불가피한 난폭한 합의 위반”이라고 비난해왔다. 합동훈련이 축소된 만큼 사거리가 짧은 미사일만 시험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셈이다. 한쪽의 행동과 다른 쪽의 반응이 맞물리면 다시 대치 국면으로 돌아간다.

북한은 지난해 4월20일 새로운 전략노선을 발표하면서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ICBM 시험발사의 중단을 약속했다. 단거리 미사일은 안보리 제재 위반일지언정 모라토리엄 약속의 중단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단거리와 중거리의 경계에서 북한이 시도하고 있는 ‘짧은(short) 도발’은 자칫 대화의 판을 깨트릴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북·미 협상 자체의 동력뿐 아니라 폼페이오의 미국 중심 사고는 한·미동맹의 명확한 한계를 새삼 드러냈다. 어찌 보면 눈앞의 북·미 협상보다 더 뿌리가 깊은 한계다. 이 대목에서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2017년 7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해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같은 달 ICBM 시험발사가 미국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미국 본토 도달 능력이 거의 확인됐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북핵 문제에 순전히 군사적인 방식의 해법은 없다고 단언하면서 북한의 제한된 핵보유를 용인하자고 제안했다. 추가 핵보유를 금지하되 기존 핵무기(10~20개 추정)를 인정하고, 다만 핵탄두 운반 능력(미사일)을 확대하지 않을 것을 타협의 조건으로 내놓았다. 다시 말해 미국에 도달하지 못할 정도의 미사일 사거리만 유지한다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그것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말이었다.

게이츠가 누구인가.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27년 동안 잔뼈가 굵었다. CIA 국장을 거쳐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걸쳐 국방장관을 지냈다. 4개의 공화·민주당 행정부의 백악관에서 국가안보를 다뤘다. 벌써부터 내년 선거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폼페이오보다는 균형 잡힌 견해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트럼프 행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운이 짙어가던 그 즈음 “전쟁이 나도 거기(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여기(미국)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몇차례나 태연하게 말했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의 말은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이라고 치자. 하지만 국가안보를 다루는 미국 전·현직 고위 관료들조차 한국과 일본이 없거나,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끼리도, 동맹 지상주의도
정답은 아니란 사실 직시해야

국제정치에서 동맹은 서로 자율권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공동의 방위를 보장받기 위해 체결하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있다. 특히 한국은 북한의 방사포와 장사정포의 사거리 안에도 있다. 동맹국의 안보가 위험해져도 좋다는 사고는 과연 동맹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됐음을 말해준다. 기실, 한반도 거주민들에게 북한의 ICBM 능력이 갖는 의미는 크지 않다. 그보다는 방사포, 장사정포 및 단거리 미사일이 더 직접적인 위협이다. 동맹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동맹은 동맹도, 그 무엇도 아니다.

폼페이오가 사용한 숏(short)과 롱(long)이라는 말로 그가 던진 두 가지 메시지를 하나로 묶으면, “북한의 발사체는 단거리(a short launch)였고, 비핵화는 먼 길(a long path)인 만큼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접지 않겠다는 말”로 요약된다. 뒤집어보면 “북한의 발사체가 미 본토를 위협하는 장거리(long)라면, 대북 협상은 짧아질 것(short)”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비록 최고지도자 간 관계에 국한됐을지언정 북한과 미국은 다행히 대화 탁자를 접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역시 자국 중심의 사고구조에서 접근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민족끼리’도 ‘동맹 지상주의’도 정답이 아니란 말이다. 한반도 남측의 이른바 보수, 이른바 진보를 막론하고 ‘외눈 물고기’에서 진화를 멈춘 듯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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