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쩌는 박정민이 하드캐리하는 영화 변산
‘변산’ 아버지의 얼굴을 때릴 수 있는 용기[무비와치] |
'변산'의 장르는 '용서'다. 래퍼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8 마일' 같은 걸 상상하고 영화를 봤다가는 생각과는 사뭇 다른 내용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산'을 다 보고 영화관을 나설 때는 자신을 괴롭혔던, 그렇기에 끝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무언가와 화해하고 싶은 용기가 생길 것이다.
- 이 영화를 관통하는 큰 주제가 '용서' 또는 '화해'라는 것은 이준익 감독의 말이다. 홍대 언더그라운드에서 'MC 심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 분)는 과거 자신을 짝사랑하던 동창생 선미(김고은 분)의 전화 한 통 때문에 평생 등지고 싶었던 고향 변산으로 졸지에 소환된다. 그가 고향에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조폭 출신인 데다가 아픈 어머니를 외면했던 아버지(장항선 분)와는 진작에 원수를 졌고, 교생(김준한 분)은 자신이 쓴 시를 훔쳐다 등단하는 뻔뻔한 일을 저질렀고, 첫사랑(신현빈 분)은 그를 뻥 차버렸다. 고향에서 행복했던 일이라곤 없으니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건 당연하다.
개중 학수를 가장 진득하게, 오래 괴롭힌 건 단연 아버지와의 갈등이다. 젊었을 땐 보란듯 자신과 어머니를 배신하더니, 다 늙어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가족을 붕괴시킨 과거만 생각하면 이가 부득부득 갈릴 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솟구치지만, 현재의 초라한 모습은 그것 대로 꼴보기 싫은 마음. 미움과 안타까움, 이 양가 감정 사이에서 학수는 고뇌하고, 그 고뇌를 랩으로 풀어낸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솟을 때, 학수는 얼굴을 들이밀며 "한 대 쳐보라"는 아버지를 정말로, 진심으로 세게 가격한다. 그때 관객은 '헉' 하는 소리를 절로 내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학수와 아버지가 해묵은 감정을 푸는 방법 중의 하나다. 꼰대와는 거리가 먼,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정서의 이준익 감독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 유교적' 장면이다.
이준익 감독은 "절대 선을 강요하는 게 폭력적인 사회"라고 말했다. 그는 "학수는 '아버지를 용서하겠습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를 주먹으로 패기까지한다. 어떤 관객은 '나 같아도 그런 아버지 용서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관객은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를 때리냐?' 할 수 있다. 두 가지 감정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학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수를 연기한 박정민은 이 장면을 "나름의 화해 제스처"라고 해석
했다. 그는 "저를 포함한 보통의 평범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분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장면일 텐데, 그래서 곰곰히 생각을 해 봤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속병을 앓다 돌아가시고, 그런데도 아버지는 장례식장에 코빼기도 안 비치고, 맨날 나를 때렸고, 그것 때문에 고향을 떠나 여전히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고..혼란스럽지 않겠나. 학수는 주먹질하며 '그래, 이걸로 다 털어버리자'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학수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잘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 테니 말할 순 없지만, 다만 학수를 보며 우리는 한 번 쯤 우리의 '원수'를 머리 속으로 떠올려보게 될 것이다. 구질구질해서 외면하고 싶었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찌질한' 흑역사와 이제는 화해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변산을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