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이즈 로스트 (2013):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미안하지 않으려면
Cozy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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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17:18
영화 '올 이즈 로스트(All Is Lost)'를 봤다. 주연 로버트 레드포드, 조연 바다랑 배. (이 양반 혼자 한다. 100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요새는 워낙 영어 원제를 적절한 번역으로 옮기는 노력이 부족해서 (예전에도 뭐 엉망인 건 비슷하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은데, 어쨌든 대사가 휴지 한 장 분량도 되지 않는 이 영화의 제목을 (즉, 영어적인 감수성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이 영화의 제목을) 굳이 영어로 남겨 두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우리말로 '모든 것을 잃고' 또는 '삶의 끝에서' 같은 것으로 번역했을 때 손님이 들 것이냐... 그것도 잘은 모르겠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적 완성도는 완벽하다. 자연과 인생의 무작위성과 행불행 앞에 감히 까불지 말라는 것이고, 어떤 험난함에 있어서도 죽을 용기보다는 살 용기를 찾으라는 것이다. 살려고 태어난 것이니 말이다. 구구절절 설명이 없다. 그냥 보고 네가 살아온 만큼만, 느꼈던 것만큼만 가져 가라는 식이어서 더욱 훌륭하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입은 다물고 있었다면 입냄새가 심하게 날 지경으로 말이 없다. (하지만 고생이 너무 심해서 그 입에선 입냄새가 아니라 단내가 난다.) 혼자이니 그 침묵이 당연할지도 모르나, 무수한 고생과 불행 속에서 오로지 스스로 할 일의 최선에 집중한다. 심지어 그 일환으로 공부도 한다. 지독한 운명 속에서 오로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들에 전력으로 집중하는 것. 실존적이고 실전적인 자세. 깨달음이 없고서는 (또는 즉각적인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자세.
바다는 지독하다. 생명의 끈을 겨우 이어 나갈 만큼만을 허락한다. 사실은 인생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깨작깨작 모아서 겨우 살 만하면 목돈 나가는 그런 거. 이제 좀 저녁에 가족들 얼굴 좀 보고 사나 싶으면 암 걸리는 그런 거.
그런 바다, 그런 인생에 내동댕이쳐진 채 '인생은 실전이야 존만아' 하는 말을 듣는 나의 실존. 영화는 그 실존을 앞뒤 수사 없이 뚝 잘라서, 신문지에 대충 받쳐서, 피가 질질 흐르는 채로 관객에게 던져 놓는다. 해석은 네가 하든지 말든지, 하면서.
기술적 측면에서의 영화는 약간 모자란다. 옷이 저렇게까지 멀쩡할 수가 없을 텐데, 부상 정도가 저렇지 않을 텐데, 저기서 저런 노인네가 살아날 수가 없을 텐데, 저게 저렇게 안 젖고 있다고? 왜 수면이 기울어져 보이도록 카메라를 기울이는데? 등등. 하지만 그냥 눈감고 넘길 만하다. 영화에서 비유하는 우리 삶이 훨씬 더 어이 없고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 된다.
영화가 끝난 뒤, 도입부에 나왔던 독백 부분을 다시 음미해 보시기를 권한다. 왜 주인공은 '미안하다'고 반복해서 말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도 '미안하다'.
*이 영화는 Steven Calahan의 실화 소설 'Adrift: 76 Days Lost at Sea'를 기초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