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나카다 히데오
출연 구로키 히토미 , 칸노 리오 , 미즈카와 아사미
링을 보고 난 이후에 밤늦게 지직거리는 TV를 통해 어깨가 움츠려드는 공포를 경험한 사람은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 이 영화는 피가 낭자하거나 팔다리가 하늘로 날아다니지 않는다. 링이 그랬듯이 이 영화도 일상적인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일상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것은 마치 "월하의 공동묘지"와도 비슷하다. 도회지가 배경이지만 그 곳은 공동묘지보다 못한 지역이다. 인간이 살고 있으나 오히려 더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가 배경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섭게 하는가. 관객은 무엇때문에 무서워야 하는가.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공포
비가 오는 날에, 혼자 집에 있을때,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이 누군가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깊은 물 속 저 아래 심연에서 엄마를 애타게 찾다가 입과 코로 물이 들어와 목구멍을 넘어 폐에 물이 찬 상태로 죽은 아이의 영혼이 녹아내려서 천장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물과 매일 오고가는 학교와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아파트 속에 공포가 들어 있다고 상상을 한다면 어떨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벗어난 범위를 보여주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관객이 간과하지 말라는 실로 엄청난 경고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영화를 보는 도중에 실생활이 생각나면서 온 몸에 소름이 좌아아악 돋지 않겠는가.
가족 붕괴로 생기는 심리적 불안
핵가족화로 인해서 선대의 지혜가 후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 20여 년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핵가족마져도 이혼을 통해서 가족이 각각의 구성원으로 쪼개어지고 있다. 성인 남녀는 이혼을 해도 문제가 없지만 한때 가정을 가졌던 아이들은 폭풍우 속에서 갈데를 못 찾은 병아리처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탈선이나 방황은 둘째 문제이고 혼자서 살아갈 힘이 없는 유아나 어린이의 경우에는 이 영화 속의 상황처럼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게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한 어린이의 유아적 불안함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가와이의 딸이 끝까지 주인공의 엄마를 끌어 앉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점점 더 필요한 부분이 소멸되고 있는 현대에서 예리한 부분을 잘라 내 만든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미래의 두려움
좀 더 절실하게 찾아 본다면 이쿠크의 공포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아이라면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어느날 집에 들어갔는데 자기 혼자만 있다면, 어느날 온 가족이 없어진다면, 어느날... 바로 이런 미래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이 영화에서는 궁극적인 공포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고등학생이 된 이쿠크가 친구 집에 우연히 놀러왔다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 잠깐 들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쿠크는 이미 유아기를 지나 사춘기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가족 붕괴의 심리적 불안이나 미래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이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 귀신과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있는 이쿠크에게도 불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대해서 알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근본적인 두려움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고민을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자 자신의 부모에게 하소연을 하여 위안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일본 영화는 작은 문제에서 시작하여 그 속에 잡다한 사상이나 내용을 다 집어 넣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이나 혹은 무심코 지나쳐 온 문제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자세히 보면, 이 영화가 상당히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