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순
저자 : 양귀자
출판 : 쓰다.
발행 : 2013. 04. 01
" 이 소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모순은 작가의 바람대로 한줄 한줄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단편을 쓰듯 '절대 몰입'해서 써 내려간 이 소설은 덤으로 얻어진 페이지가 단 한 페이지도 없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독자에게도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페이지가 단 한 페이지도 없다. 모든 텍스트가 의미가 있어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모순은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는 소설로 유명하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살면서 적어도 3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결혼 전, 결혼 직후, 결혼 후 한 참 시간이 지났을 때 읽어보면 그때마다 또 다른 해석을 내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사람은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런 인고의 시간은 삶의 또다른 이면을 깨닫게 하고 그것 또한 삶의 한 모습임을 인정하게 한다, 젊은시절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옳고 그름에 확실하게 그었던 이분법적 선들은 무뎌지고 흐려져 결국 하나가 된다. 삶을 뒤돌아 보니 자신도 얼마든지 모순적인 행위를 해 왔고, 이런 모순적 행위를 통해 인생이란 정답이 없고 계속 탐구해가야하는 진짜 무엇임을 느낀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모순의 내용을 간단히 정의하면 응답 시리즈처럼, 25살의 여주인공 안진 진의 남편 찾기이다.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를 등장시켜 결혼 상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아빠와 이모부와 같은 두 남자 중 누구를 선택하는 게 더 나은 건지 소설 내내 고민하게 한다. 작가는 부유하지만, 무료하고 심심한 이모의 삶보다는 빈곤하지만 심심할 틈이 없이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엄마의 삶을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인 듯 그려낸다. 하지만 모순되게 주인공은 결국 자살한 이모의 삶을 선택한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작가는 '단지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주인공의 짧은 말로 소설은 끝낸다. 이 부분이 모순을 26년 동안 사랑받는 원동력일 것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왜 주인공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 고민하게 하고 토론하게 만들어 각각의 기준으로 결론짓게 만든다. 이 기준은 세월에 따라 변하고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내는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세월이 흘러 딸들이 결혼을 앞둔 시점이 되면 나는 다시 '모순'을 꺼내 읽을 것이다. 그간 삶의 경험으로 지금과는 다른 해석을 할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간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해석의 폭이 지금보다는 넓어지고 깊어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