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의 증명
지은이 : 최진영
출판사 : 은행나무
발행일자 : 2023년 4월 26일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소설 ‘구의 증명’이란?
식인이란 독특한 소재의 소설, 출판한 지 5년 후 유튜브들의 입소문 또는 인기 드라마 남주인공이 구 씨여서 등등의 이유로 역주행하며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특히 20대가 좋아하는 소설로 유명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나는 지금 구를 기다리고 있다.
‘구의 증명’은 처절하고 애절한 사랑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주인공 '구'는 인생의 풍파 속에 공처럼 계속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구를 여주인공 '담'이는 마치 집의 담처럼 기다리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담이는 부모 없이 이모와 함께 사는데 이모는 소설 속의 등장하는 몇 안되는 좋은 어른이다. 이모는 담이에게 서로의 삶을 인정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구에 대한 담이의 사랑은 깊고 변함이 없다. 구가 다른 여자와 동거하는 걸 알았을 때도, 구가 어느 날 불쑥 돌아왔을 때도, 구가 사채업자에 쫓겨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구가 죽었을 때조차 담이는 묵묵히 자신의 사랑을 이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 즉 식인이라는 방식으로 구를 애도하고 증명한다.
나는 내가,
너를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구의 증명은 간결한 문체와 감성적인 표현, 박진감이 넘치는 이야기 전개, 구와 담이의 일인칭 시점을 오가는 형식으로 높은 몰입감을 준다. 핑크빛이 아닌 잿빛에 가까운 사랑이기에 더 애절하고 처절하다. 작가는 구와 담이의 사랑을 철저하게 현실에 뿌리를 두고 그려나간다. 그들은 결코 ‘어려움 속에도 서로를 사랑하며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명작동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돈이란 자본주의의 괴물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고, 구의 삶을 집어삼켜 버린다.
그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담이가 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구의 시체를 먹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식인이란 행위가 담이에게는 세상의 폭력 속에서 구의 삶을 온전히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을테니까. 담이는 소설 첫 부분에 자기가 최후의 인류가 되길 소원 한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이라면 자신의 식인이란 행위가 더는 추악하거나 반 인류적인 행위가 아닌 사랑의 한 형태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현대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식인보다 더 야만적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돈이 세상의 기준이 되었을 때, 생명의 가치 또한 경제적 잣대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인격이 상실되고 돈만 좇아가는 현대사회는 지금도 수많은 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오랫동안 마음이 무겁고 침울한 이유는 소설 속 식인의 설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