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서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선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게 허락되지 않았어. “(317쪽. <작별하지 않는다> 제 3부 불꽃 중에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제주 4.3 사건은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던 슬픈 시절, 이념의 대립 속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많은 제주 도민들이 무장한 국가 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희생당한 아픈 역사이다.
사건 후 50년이 지나서야 국가로부터 ‘국가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희생’으로 인정을 받고 유족과 제주 도민들에게 학살에 동참했던 단체들로부터 과거에 대한 사죄가 이루어졌다.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임에도 그것으로 인정받는데에 대단한 오해들이 있었고,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던 사건이었다.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 대통령이 나올 때까지 역사의 장에서 밀려난 채로 그저 조용히 덮어두어야 하는 사건이었고, 1995년에야 비로소 첫 진혼제를, 1998년이 되어서야 위령제를 모셨다고 하니 희생자들의 넋도, 유족들의 상처도 50여 년 동안 묵히고 묵혀야 했던 참으로 잔인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극중 제주의 딸이었던 ‘인선’조차 엄마가 죽기 전까지 자기가 나고 자란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을 잘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엄마를 이해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엄마(정심)의 슬픔이 단지 개인적인 우울이 아니라, 시대의 폭력에 잃은 가족에 의한 것이며 그것이 단지 개인사나 가족사가 아닌 제주도민 전체의 나아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아픔임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 알고자 엄마보다 더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하는데 열과 성의를 다한다.
사랑하게 되면 더 알고자 한다. 엄마를 그리도 이해하지 못했던 인선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4.3의 아픔을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했던 엄마를 그제서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한다.
글을 쓴 작가 한강은 ‘이것이 지극한 사랑이기를 빈다’는 말로 글을 마쳤다.
글을 읽고 나서 작가의 마지막 말이 도대체 왜 ‘지극한 사랑’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역사에 대한 글이고 두 친구의 극한 제주 체험기가 아닌가 싶었던 내게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다시 책을 읽으면서 ‘지극한 사랑’이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극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지극한 관심을 갖는 것이고,
지극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추앙하는 것이며,
지극한 추앙을 한다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작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결혼’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는 시간이 따로 있고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법이다.”
우리는 모두 그 때도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증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작가 한강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잊어선 안되는 삶을, 우리가 잊어선 안되는 사람들을.
그리하여 이번 작품에서는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 단단해지고 차가워져야 했고 냉정해야만 했던 눈(雪)을 닮은 제주 사람들을 증언하고 있다.
“눈을 피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잠시 들여다봤다. 오히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보려는 것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그건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사진이었다.” - (32쪽, 제 1부_2. 실 중에서)
소설 속의 경하가 들여다보는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사진’은 사실은 작가 한강이 참고 들여다보아야 했던 4.3의 제주였다. 더이상 놀라지 않을 만큼 참혹한, 그 날의 기록. 각고의 노력 끝에 수집된 자료와 피해자의 가족들이 남긴 인터뷰 기록, 사망자의 데이터, 진상조사 보고서를 고통 속에서도 놓지 않고 사력을 다해 작품 안에 담았다. 힘겨운 시간 속에 낡고 쇠약해진 사람들을 오롯이 담았다. 그래서 작가 한강의 작품은 아프고 아프다. 그렇지만 그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가 이제 함께 느꼈기에 아팠지만, 그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과 함께 할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작가 한강의 글이다.
글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본다. 이미 시간이 지나 지금은 볼 수 없는 시절의 사건과 사람들. 좋은 글을 통해 보는 시대와 사람들은 어쩔 땐 지금 만나 곁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것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정 사랑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과 그 시절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쩌면 이미 돌아가 먼 세상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다시 만나 함께하며 위로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않는다
#한강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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