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채식주의자』, 한강

채식주의자 대표 이미지 


제 블로그(http://onedayonebook.tistory.com)에서 퍼온 글입니다.

 

일일일읽's comment :

세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책은 내면의 충동을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세 명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를 통해 작가 자신이 품고 있는 내면의 충동을 고백하는 듯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내면 안에도 있을 충동과 공명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내면을 억누르고 인내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의 내면이 현실로 뻥 터져 나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이 책은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평범한 가정의 주부이고 그 다음 이야기(『몽고반점』)는 그 형부, 그 다음(『나무 불꽃』)은 그 형부의 부인이자 첫 번째 사람의 언니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따로 독립되어 있는 단편소설이면서도 그 내용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연작 소설이다. 오래 전에 두 번째 이야기인 『몽고반점』을 통해 한강이라는 소설가를 처음 접했는데, 그때 작가가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충동이 진행되다가 마침내 분출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관심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머지 앞뒤의 이야기들을 마저 읽고 나니, 작가는 내면의 은밀하면서도 뚜렷한 충동이란 것에 보다 생각보다 깊게 천착하고 있었다.


연쇄적인 반응들의 시발점이 된 첫 번째 주인공은 아주 평범하고 무던하여 그 남편으로부터 적합한 결혼 상대로 받아들여진 여성이다. 이야기 속 화자는 그 남편인데, 어느 날 아내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안방에서 나오는 것, 질문,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까지 모두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만 무시했을 뿐이다. 가끔 그녀가 심야드라마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귀가하는 기척을 듣고 있으면서 무시했던 것과 같이. 그러나 새벽 4시의 캄캄한 부엌, 사백리터 냉장고의 희끄무레한 문 앞에서 몰입할 만한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여보!"

나는 어둠속에 드러난 그녀의 옆얼굴을 보았다. 처음 보는, 냉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꿈을 꿨어."



그녀가 응시하고 있던 것은 냉장고 속 고기들이었다. 그녀가 그날 밤의 꿈으로 인해 그전까지는 잘만 먹던 고기를 돌연히 끊으면서 책 전체에 걸친 연쇄 반응이 줄줄이 이어진다. 첫 번째 주인공과 세 번째 주인공인 두 자매는 남편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순종하면서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군대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각의 남편들의 입장에선 부인으로 삼기에 '좋은 여자'였다고 서술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중 동생이 '좋은 여자'답지 않게 자신의 내면속에 빠져들면서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페미니즘 문학의 선봉에 있는 듯이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책 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기제가 신체의 증상이란 점도 페미니즘이 신체를 표현의 매개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야기 속 신체의 증상은 내면의 움직임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기에 그렇다.
 

 

그후 그녀가 보낸 사개월여의 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혈은 이주쯤 더 계속되다가 상처가 아물며 멈췄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몸에 상처가 뚫려 있다고 느꼈다. 마치 몸둥이보다 크게 벌어진 상처여서, 그 캄캄한 구멍 속으로 온몸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페미니즘 문학으로 여기기에는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인간 내면의 폭이 좁지 않다. 세 개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남성' 내지 '남성성'에 의해 억압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 모두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내면의 충동에 점점 저항할 수 없게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의 흐름은 뚜렷하다. 첫 번째 주인공은 어느 날 밤 꿈을 꾸고는 저항하려 하기도 전에 내면의 변화가 현실 속으로 덮쳐온다. 반면 두 번째 주인공은 자신의 입장에선 처제인 첫 번째 주인공을 보면서 자기도 몰랐던 내면 속의 욕망을 발견하고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억누르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국은 내면의 움직임에 저항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두 명을 지켜보던 사람이 세 번째 주인공인데, 마찬가지로 어떤 내면의 움직임을 느끼지만 아들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 두 명의 결말을 지켜봐서인지 자신의 충동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도 그렇게 될 것임을 암시하면서 책은 끝이 난다.
 

 

다만 소름끼칠 만큼 담담한 진실의 감각으로 느낄 뿐이다.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무너졌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오늘 영혜가 토한 피는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나왔어야 할 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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