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대자연인 이백
안치 지음, 이창숙, 신하윤 옮김, 이끌리오
지은이가 왜 제목을 "대자연인"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면 번역하는 과정에서 수식어를 더 붙였단 말인가.
이백. 이 책을 읽기전까지만 해도 이태백하면 하늘의 태백성이 지상에 현존한 풍류와 호방함의 대명사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한잔 마실때마다 흘러나오는 훌륭한 시구들, 세상에 대한 슬픔을 시로 승화시키고 스스로 주선(酒仙)이 되어 달을 건지러 뛰어들었다는 자유로운 정신.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의 이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옛 사람들의 책을 파헤쳐서 그 당시에 적용하려고 했고 옛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서 스스로를 너무도 영웅처럼 생각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옛 사람들의 생각에 빠져서 당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바이다. 마치, 어린 시절 신동이라 칭송받던 아이가 결국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마찬가지이다.
아니다. 그는 그렇게 평범하지도 않았다. 제갈공명이 삼고초려를 거쳐 촉의 위업을 달성하려 했던 것처럼, 그 자신도 촉지방 출신이어 삼고초려를 기다렸고 개원의 치라는 현종 시절 어떻게든 나라를 향해 나아가려고 시도를 했다. 그 모습은 풍류와 자유에서 무척 멀었으며 10년 공부를 기약한 채 가족을 굶기던 허생과 다를바 없었다.
차라리 과거를 통해서 나아갔더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추천을 통해서 등용하겠다는 꿈으로 이곳저곳에 연을 대던 것이 어찌나 어이없으며 힘들어 보였는지. 그런 풍파를 겪은 이백이 쓴 1000여 편 이상의 시가 그다지 빛이 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10대때에 막연히 배웠던 사람에 대해서, 교육상 조작된 정보에 의해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내게, 이 책이 제대로된 정보를 준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전달자가 어떻게 왜곡하면 원본과 틀려질 수 있는지도 확연히 알게되는 바이다.
이 책에선, 그가 풍류를 즐겼다고 말은 하지만, 가족들이 굶어죽을 지경까지 갔는데도 출세하는 길을 찾아서 떠돌아 다니는 이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두보와 함께 중국 당나라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로도 이런 시인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중국 문학의 격조를 높인 사람인 건 부인할 수 없다. 대자연인? 글쎄. 역시 그도 그 시대를 고민하며 살아간 지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