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문화 예찬
타일러 코웬 지음, 임재서 이은주 옮김, 나누리
이 책을 처음 봤을때, 상업 문화 예찬이라고 해서 어떨까 궁금했다. 막상 집어 들고 보니, 경제학자가 문화 예술 방면에 대해서 경제학적 관점으로 글을 써 놓았다.
일전에 예술방면에서 밥숟갈 파고 있는 친구와 잠깐 논쟁을 했다. 예술적인 영화가 더 나은가 아니면 상업적인 영화가 더 나은가. 상업적이면서 예술적인 영화가 더 낫겠지만, 어떤 예술이든 이쪽 방면으로 먹을 것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고민을 해 봤을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절에는 문화 예술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 주로 후원자들에게 의지를 많이 했단다. 그러던 것이 일반인들에게 확대가 되고 문화 예술 감상의 대가를 지불하면서부터 지금처럼 문화 예술가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라고 저자는 적고 있다.
때때로, 과연 순수 예술이란게 무엇일까 고민을 해 보았다. 문화 예술은 혼자만 즐기려고 존재하는 바가 아닐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여 뭔가 만든다 하면 무언가 공감하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순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했다는 점에서 "순수"를 넣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스티븐 스필버그같이 사람들 심금을 울리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흥행을 주도하는 예술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는 상업성을 충분히 갖추어서 관객들이 원하는 내용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는 진정한 예술가인가.
분명히 문화 예술도 금전적인 면이 있어야 지속을 하고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 책 저자가 경제학자인 점을 주목해야 한다. 경제에서는 시장 거래가 있다. 시장 거래에서는 상품이 있고 그에 따른 대가 지불이 있다. 정당한 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발전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읽으면서도 동감을 많이 했고 나름대로 그 친구와 토론을 하면서 했던 이야기들이 많이 생각났다.
좀 더 덧붙이면, 동시대에 사람들이 즐겼다 하여 그것이 예술이라기보다 상품처럼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줄 수 있는 것이, 그것을 예술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