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
리처드 오버리, 류한수 옮김, 지식의풍경
실로 놀랍다. 아니 우리는 참으로 정보가 제한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이제야 보았고 이렇게 거대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우리가 이제까지 본 영화/기록에서는 미국과 영국을 위시한 연합국이 서부유럽에서 엄청난 희생을 통하여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되어 있다.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발지 대전투, 덩케르크 상륙작전, 그리고 태평양 전쟁 등등.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재했었지만 우리가 간과해 왔거나 애써 무시해 왔던 요인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바로 다음 책 "새로쓰는 냉전의 역사"에서도 조금은 언급이 될 텐데,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의 양 전선에서 싸운 나라는 미국 하나뿐이 아니었다. 구 러시아 제국의 뒤를 이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도 실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주축국과 전쟁을 하였다.
영국에서 BBC 방송 자료를 만들면서 찾은 러시아측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가히 엄청난 사실들을 쏟아냈다. 머리속으로만 알고 있던 독소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중 타 지역의 전체 사상자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사상 최대의 전차전, 포위전, 기동전 등이 있었다. 특히, 두 독재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신경전과 전투로 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고 그 참상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가 독일의 침공에 맞서 싸운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볼세비키 혁명은 지금에 와서는 공산주의의 첫 발현이라는 점과 냉전의 씨앗이었다는 점에서 저주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 당시로 본다면 볼세비키 혁명은 고통받고 있던 러시아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민중이 참여하는 정부를 구축하기 위해서 레닌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독재자 스탈린은 이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자신이 짜르인 "제정 러시아 시대"로 만들어 버렸다.(이 내용 역시도 "새로쓰는 냉전의 역사"에 자세히 언급이 되어 있다.) 특히 볼세비키 혁명 이후 반혁명군이 적극적으로 러시아 본토를 유린하던 시기에 스탈린은 광적으로 서구 열강에 대해서 불신을 품게 되었고 독일과의 전쟁에서 초반에 밀렸던 것도 역시 그 의심에서 나타난 결과로 인한 것이었다.
민중의 힘이니 민중의 고통이니 하는 것들을 인정하기는 싫으나 이 책을 보면, 스탈린이 잘나서 혹은 지도력이 뛰어나서 그 엄청난 고통을 벗어났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소비에트 연방을 구하고자 하는 "민중"들에 의해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의 뒷 부분에는 독소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공으로 돌리기 위해서 스탈린이 한 행동들이 나온다. 이제는 구소련도 붕괴하였고 기록들도 해금이 되어서 스탈린의 행동들이 얼마나 과대포장되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그라드(현 볼가그라드)와 레닌그라드(현 뻬쩨르부르그) 등 여러 격전지에서 러시아의 인민들이 조국을 위해서 싸웠던 숭고한 정신과 뜻은 조금도 손상이 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과 독소 전쟁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