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얼굴의 기사 세르반테스 이야기
라파엘로 부조니 지음, 송재원 옮김, 풀빛
돈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스페인에서 태어나 우리에게 "돈 키호테"를 남긴 사람이다. 스페인어를 잠깐 배운 바 있는 본인으로서는, 번역문으로만 봐서 당최 그 문체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세르반테스의 주옥같은 글들이 현대 스페인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비록 번역체지만 얼핏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문학이 주로 영어권 작품을 흡수하다보니 영어의 완성이라는 세익스피어가 있는줄 알았더니 스페인어의 완성인 세르반테스가 있었다.
유럽의 귀족이 가지는 특징은 이름 구성이 길다는 점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사아베드라 일족의 세르반테스 가문의 미구엘인 셈이다.(예를 들어 해주 정씨 가문의 아무개와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 나갈때에는 문제가 없다. 항상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몰락"했을 때이다. 세르반테스의 가문 역시 한때는 권위있는 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아버지 대에 이르러 귀족으로서는 품위가 당최 서지 않는 의사를 하면서 끼니를 유지해야만 했다.
세르반테스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생하고 젊어서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고 또 5년간 노예생활에 제대로된 돈벌이를 가지지 못해서 국왕을 위해서 세금을 걷는 일을 했다. 개인적으로 세르반테스는 흥망성쇠를 다 겪고 몰락하는 스페인의 표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판토 해전으로 막대한 부를 긁어모은 스페인과 필리페 2세는 무리한 욕심으로 영국까지 공격을 하다가 결국은 몰락을 맞이했다. 그 이전 이사벨라 여왕 시절에 최초로 대규모 탐험대를 보내어 세계의 부를 긁어모은 스페인이 결국은 그 부로 인해서 스러지게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삶은 스페인의 한창 때에 시작하여 혜택보지 못한 귀족으로서, 한 평생을 마칠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틈틈이 글을 써서 극단도 운영해보고 연출도 해 보고 그러면서 사랑까지도 겪었다. 관직에서 생활하다 잘못된 기소로 옥살이를 할때, 불운한 이 천재에게 하늘은 기회를 주셨다. 마치 화수분처럼, 지하 150M에서부터 지상을 향해 힘차게 솟구치는 광천수처럼 천재의 머리 속에서 영감이 떠올랐다. 자신의 신세와 몰락한 스페인의 신세가 어느 한 인물에게 투영이 되었고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사도를 바탕으로 한 엄청난 이야기 "돈 키호테"가 탄생했다.
이제까지 수없이 읽었던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들은 모두 그가 겪었던 일이거나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일의 하나라고 생각을 하니, 저절로 숙연해지는 감이 없잖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라파엘로 부조니도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를 쓰면서 간간히 자신의 감정을 실었다. 저자 역시도 세르반테스의 삶을 답습했다고 하니 이 역시 우연이 아닐까 싶다.
[이 게시물은 칠성님에 의해 2009-12-14 14:33:22 추천 도서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