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철학에 대해서 설명한 책입니다. 인간 자유에 대한 장자의 시각을 실존주의와 관련해서 해석하면서 이해가 쉬웠구요, 그리고 '도'개념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정리한 거 같아서 도가철학 시작할 때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중에 가장 맘에 들더군요. *^^* 뭔가 현대인의 불안과 고통을 해결하는 데 어느정도 혜안을 제공해주는 것 같아요.
책에서 스크랩해온 부분들 몇개 올려봅니다.
92
장자도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며, 그러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한 도덕의 필요성을 수긍한다.
그러나 그들 도덕 규범이 인간 존재의 실상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인간 마음의 미묘한 사정을 면밀하게 통찰하여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도덕규범은 바람직한 현실 상황에 질서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식에 빠지고 쓸데없는 허위와 위선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97
장자는 공자의 도덕적 이상주의를 진실하고 총명한 우등생의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정말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우등생이더라도 현실의 인간을 모두 자신과 같은 수재로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은 총명하기 때문에 생긴 무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둔재와 범부의 세계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98
.. 그(공자)의 표현은 항상 성현의 경지에서 범주를 깔보고 질타하는 말투가 깃들어있다. 그의 일방적인 가치관이 거기에서 생겨나고, 그 가치관의 강요가 그에게 다시 신체의 위협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인간을 도덕적 혹은 지적 가치로서 성현과 범부로 구분하면서, 범부가 성현이 되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는 것은 마치 황하의 흐린 물에게 저 하늘의 푸르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범부가 범부에서 헤어날 길도, 구제될 길도 끊어져 버린다. 범부도 인간으로서 세상에 태어난 이상 최선을 다해서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만약 성현만이 살아갈 가치가 있고, 범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 생명에 대한 더할 수 없는 모독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108-110
지식의 본질은 대상 자체를 인과적이고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일체의 만물을 분류하고 구별하여 그 상관관계 혹은 인과 관계를 법칙화하고,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원리를 확립하여 미지의 세계와, 미지의 체험을 그 확립된 원리로 예측하는 것이 바로 지식의 근본적 기능이다.
여기에서 인간과 자연, 자아와 외물, 그리고 주관과 객관이 구별된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것은 자잘한 것과, 시작은 종말과 그리고 현실은 꿈과 구별되어 각가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정립된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는 원인에 연결되고 현재는 과거와 미래에 연결되며, 특수는 보편에 연계되고, 현상은 본체에 관계지워진다. 현상 세계에 대한 이분법적 법칙은 지식의 본질이다.
인간의 가치관 역시 그 지식의 산물이다. 일체의 사물을 분류하고 구별하는 지식의 작용은 그 분류와 구별을 가치에 따라서 서열을 나누어 정리한다. 즉 동물보다 인간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추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더 낫다고 여긴다. 혹은 나는 저 사람보다 선하며, 이것이 저것보다 올바르며, 갑이 을보다 참되다고 여긴다.
여기에서 모든 존재는 가치 판단에 따라서 등급이 정해진다. 모든 언설과 행동은 시비선악정사등의 가치 개념에 따라서 자리매겨진다. 가치 판단 역시 일종의 질서지움이다.
그 질서지움으로 인간은 개인의 생활을 풍요하게 하고 사회의 진보를 실현하며, 인류 문명을 창조했다. 참으로 인간은 위대한 만물의 영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자는 다시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 그렇듯이, 지식의 작용 역시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위험성을 그 속에 내포하고 있다. 예컨데 다음과 같다.
인간의 지식은 현재를 과거와, 혹은 미래와 연결짓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인간의 불안은 간혹 미래를 향한 눈동자 속에서, 비애는 간혹 과거를 돌아보는 표정 밑에서 치밀어오른다.
미래는 인간에게 있어서 장미빛 행복을 기대하게 하는 희망이며, 동시에 잿빛 불행을 예측하게 하는 절망이기도 하다. 과거 또한 인간을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하지만, 치욕의 시절을 환기시켜서 절망으로 이끌기도 한다.
인간 의식에 있어서 기대와 절망, 위로와 실망은 표리관계를 형성한다. 그 표리의 변덕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농락하고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히게 한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로 갈라져서, 현재를 현재로서 직시하게만 하는 우리의 꺠어있는 정신은 쇠락하게 된다. 그 쇠락 속에 의심과 공포, 미혹과 주저, 불안과 절망, 그리고 광분과 무기력이 잠입한다. 지식이라는 독약은 참으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또한 인간의 지식은 외물의 세계를 분류하고 쪼갠다. 그 예리함은 시체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메스의 위대함이 승인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체에 한정된다. 그것을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휘두르면, 곧 살상의 무기가 된다. 지식 또한 외물의 세계에서 위대한 효용을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전일적인 생명에 종종 살상의 칼날을 들이댄다.
124-125
예의의 강조는 인간이 다른 사람과 일체감을 잃고 대립 의식을 갖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랑한다는 의식을 가질 떄는 이미 사랑의 순수성은 상실되고 만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의식도 갖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사이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파탄이 일어나 미래를 위협할 때, 사람들은 사랑을 강하게 의식한다. 사랑이란 사랑의 상실에 대한 불안감에서 파생된 방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규범으로서 세워진 예의가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의 시작이라는 의미도 그렇다.
사랑은 또한 증오와 표리 관계를 이루는 감정이다. 증오가 없다면 사랑 역시 있을 수 없다. 마치 맑은 날만 있꼬 비가 내리는 날이 없다면, 맑은 날이라는 표현조차 무의미하다.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미워하기 떄문에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해치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종종 사랑하는 사람을 해친다.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 된다. 따라서 사랑을 규범으로 세우는 것은 사람들에게 미워하고 학대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일이다.
160-161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건 엄연한 현실. 하지만 자기가 왜 태어나고 무엇때문에 죽음으로 운명 지워져 있는지, 그 근원적인 이뉴는 알 수 없음. 과거는 무한, 미래도 무한. 자기 존재의 근거는 자기가 지금 살아있다는 분명한 사실 그 자체로 파악할 수밖에 없음. 현상계를 주재하는 신 아님. 자기가 그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은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사실처럼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 즉 자연이다. 일체의 만물은 스스로 생성하고 존재하며 변화한다.
'도'를 진실재라고 하면 틀림없이 만뭀이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변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도는 생성과 변화를 떠나 별개로 존재하는 어떠한 것이 아니다. 만물의 생성과 변화야 말로 도, 즉 진실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