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무인이야기 3
이승한 지음, 푸른역사
이 책은 최씨 왕조의 전성기였던 최이때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최항과 최의에 대해서 썼다. 최충헌과 최의는 대략 60년
정도 기간을 가지는데, 최충헌의 증손자 때에 최씨 왕조가 막을 내렸다.
저자는 최씨 왕조가 명실공히 고려의 핵심 권력을 장악했는데 왜 "왕조" 개창을 하지 않고 무너졌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다. 왕을 갈아치울 정도의 힘을 가진 최씨 왕조가 문무백관까지도 마음대로 임명하고 온갖 재산을 수탈하는데 왜 왕씨에서
최씨로 왕조를 바꿀 생각을 못했을까.
저자는 몇 가지 논거를 찾았는데, 첫번째는 천명이라는 부분이다. 왕은 예로부터 하늘에서 온다 하였는데 이는 백성들이 추대를
하여 왕으로 모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비록 최충헌 대에 권력을 잡았지만 왕씨의 고려 왕조는 지방 호족들도
탄탄히 버티고 있어서 쉽게 넘어뜨릴 수가 없었다. 사병을 통해서 집권층을 협박할 수는 있지만 전국적인 봉기로 이어진다면
최씨의 가병들로도 감당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둘째로는 갑작스럽게 침입해온 몽골 때문이다. 최씨 왕조로서는 왕위에 오르면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데, 왕위를 그대로 두면 책임은 왕이 지고 이익은 자신들이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국제 정세를 모르는 지배층이 있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다 짊어지고 간다.
지금이야 투표를 통해서 의지라도 밝힐 수 있지만 저때 당시에는 불만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그저 당하기만 해야 한다. 몽골이
어떤 세력인지 금과 송은 어떻게 되었는지 국제 정세도 파악하지 않은 채로 무작정 몽골에 당하다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섬으로 천도하는 것이라니. 게다가 주력 부대는 모두 자기 가병으로 삼은 채 전문성이 없는 부대로 몽골을 막게 했다. 또한
병력을 많이 주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1만 이상 병력을 풀지도 않았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는 표현이 기가 막히게 맞는
경우가 아닐까.
이런 좁은 식견으로 어떻게 정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겠는가. 최이, 최항, 최의 때 숙청한 사람들은 몽골과 싸우지도 못하고
권력에 희생된 경우가 아니던가. 외적부터 막고서 내정을 다스려야 하는데, 이런 통치는 언제든 망할 수 있다. 1948년
이후 한반도가 두 집단으로 나뉜 상태인데, 북쪽 왕조는 60년 넘게 3대째 집권을 하고 있다. 백성들이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느냐 아니면 권력 유지를 위해서 숙청을 일삼느냐에 따라서 그들 운명도 결정되겠지. 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면 좀 더 오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최씨 왕조처럼.
끊임없이 몽골이 침입해 오는데도 정권 유지에만 급급하고 인재를 키우기보다는 가신과 사병에 의존한 최씨 정권은 결국 그
기반이 모래성과 같아서 최항 집권 8년 이후 최의 때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다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렇게
썩어 빠진 집권층이 있었기에 이성계가 등장하고 조선으로 바뀐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