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읽's comment :
이 책은 1692년에 처음 발행되어 오늘날까지 기독교 영성에 관한 고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종교이든지 소위 종교인에게는 종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저마다 섬기는 주님께 보다 헌신하는 삶과 그에 따르는 기쁨에 대한 생생한 증거로서의 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종교가 없는 이에게는 지복의 상태에서 흔들림 없었던 한 인물의 삶을 접해보는 것도 귀한 기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비주의자란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이 책 또한 '기독교 영성에 관한 고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테두리에 갖혀 있지 않습니다. 사실 '기독교 영성'이란 말은 다름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믿음을 키운 인물 중에 신비주의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신비주의자란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신의 현존을 느끼고 그에 몰두하는 영적 전통을 이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책의 원제 또한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으로서 '신의 현존의 수행'이란 제목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신비주의자는 고금을 막론하고 유일신을 신앙하는 모든 종교 내에 있어왔으며, 유명한 예로 12세기에 수피교의 루미란 인물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종교의 교리에 매몰되는 일이 없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에게 교리를 설파하는 대신, 오직 신과 함께 하는 은혜와 기쁨과 충만함만을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속에는 그 자신이 속한 종교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린 신비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신비주의자들어떤 사람은 신과 함께 하는 지복의 상태에서 신에 대한 더욱 강한 열망을 드러내면서도 행여 이단으로 몰릴까 두려워서 말을 삼가고 주변에게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정식으로 인정되어 오늘날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그가 아빌라의 성 데레사입니다. 이 책은 로렌스 형제- 형과 동생이 아닙니다. 여기서 형제는 호칭이지요. -가 쓴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도 로렌스 형제는 누군가에게 신앙에 관한 조언을 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저희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 '이 형제는 ...'하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N원장님께 이렇게 특별히 펜을 든 이유는 저희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면서 얻은 놀라운 결과와 지속적인 도움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원장님과 함께 나누려는 것입니다. 원장님도 잘 알다시피, 지난 40년 이상 저희 수도원에서 생활해온 이 형제의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의 테두리에 갖히지 않는 신비주의자
윗 구절에는 이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는 이 책에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비록 여기서는 '하나님의 임재'라고 번역합니다만 실제로는 '주님의 현존'이라고 번역하는 게 로렌스 형제가 편지로 전달하려고 했던 바에 부합합니다. '주님'이란 호칭은 어느 교리에도 국한될 수 없는 단 한 분을 가리키기에 그렇습니다. 로렌스 형제가 쓴 편지들의 내용 중에는 교리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으며 시종일관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더욱 주님과 함께 하려는 열망만이 드러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설교자라면 하나님의 임재 연습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영적 지도자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도록 조언할 것입니다.」
신성한 단순함
둘째로, 이 책이 처음 발행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은 로렌스 형제가 몸소 모범을 보였던 '신성한 단순함'이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유일한 관심사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연습'했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가 전생애 동안 실천해온 단 한 가지였으며, 그 한 가지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로렌스 형제를 있게 했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그 연습이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기도이자 예배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그 한 가지를 붙잡고 놓지 않아, 끝내는 자고 있는 동안에도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경애하는 원장님,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영혼의 평화와 안식이 심지어 잠자는 동안에도 저에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단순함의 가차 없는 실천
이 지점에서 성철 스님이 선을 수행하는 법을 얘기하면서 언제나 화두를 들고 다니는 데에 어떤 경지들이 있다고 말한 내용이 연상됩니다. 여기에는 동중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동중일여는 깨어 있는 동안 움직이고 무언가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드는 것, 몽중일여는 잠잘 때에 꿈속에서도 화두를 드는 것, 숙면일여는 꿈도 없이 아주 깊게 잠들었을 때에도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이같은 관점에서 로렌스 형제가 주님의 현존이라는 화두를 제대로 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지는 그 단순함의 가차 없는 실천에서 느껴지는 엄격함입니다.
단순함이 주는 은총
로렌스 형제의 이야기가 이후 종교계에서 귀한 선물로 여겨져 온 것은 기존의 종교인 내지 신앙인들에게 '연습' 내지 '수행'이란 단어의 가치를 널리 일깨웠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 회개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고 나면 이제 소위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쉼 없이 '연습'하고 부단히 나아가야 할 바가 있노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신성한 단순함이며, 로렌스 형제는 그의 편지들을 통해 그 단순함이 가져다 주는 은총을 증거하는 인물로 오늘날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