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 블로그(
http://onedayonebook.tistory.com)에서 퍼온 글입니다.
일일일읽's comment :
한국에도 멋진 법정소설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유명한 게임인 '역전재판'에서처럼 "이의 있습니다!"란 말 하나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재판 결과를 넘어 소설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긴 템포를 가지고 인간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낯설은 법정 용어들이 무수히 등장하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서 아주 재미있게 읽힙니다.
작가는 앞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에서부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개인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종(種)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저 '윤 변호사'로 불릴 뿐이다. 소설 속에서 그 자신은 다른 사람의 이름 석 자는 잘도 부르면서 자신을 호칭 때에는 "윤 변호사입니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는 시종일관 자신의 시선으로 이야기들을 서술하면서 그 자신의 정체성을 개별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변호사로서의 존재 속에 자리잡아 놓는다.
나는 변호사였다. 나는 소리 없이 세상의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변호사들은 왜 변호사가 되었는가.
그런 시선을 통해서 '나'는 각종 상황 속에서 인간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선택을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개개인으로서 바라보지 않고 인간 종 전체에 대한 관점으로 바라본다. 특히 사람이 비겁해지기 쉬운 상황을 여럿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에 후술할 내용과 연관이 있는 선택의 장면을 아래에 인용한다.
재판장은 항소시한 동안, 즉 일주일간 박재호의 구속을 면하는 매너를 보여주었다. 항소의 길을 직접 열어주겠다는 암묵적 의사표시였다. 배심평결을 뒤엎은 건 미안하지만, 나는 겨우 하급심 재판장이니만큼 정치적으로 위험한 판결의 손고는 못하겠다는 뜻의 몸짓이었다. 대법관쯤 되는 법의 화신들에게 이 이야기를 호소하면 통할 수도 있어 보인다는 귀띔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 호의로는 면피할 수 없다.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배심원 여러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게 만장일치로 모인 뜻을 물거품으로 만든 자의 말이었다.
법정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에 훈훈한 미담 같은 것은 애초에 어울리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법정이라는 배경이 사람들의 본성 중에서도 어두운 부분을 유독 잘 끄집어 내기 쉬운 곳이라는 시선이 소설 전체에 배어 있다.
하지만 쉽게 비겁해질 수도 있는 인간에 대한 실망 역시 인간으로서의 오만에 가까운 것이다.
"윤 변호사를 부른 이유는 하나야. 난 박재호한테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네. 그 사람은 내가 권력 앞에 신념을 꺾고 굴복한 개라고 믿고 살아가도 돼. 내가 그 사람한테 주는 일종의 사죄의 선물이라고 하세. 하지만 고민해봤네. 그래도 윤 변호사에게는 이 이야기를 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 왜냐하면 박재호와는 달리 윤 변호사한텐 그런 착각을 누릴 권리가 없거든."
이 소설은 여러 모로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 그 중 하나가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소수의견이다. 법을 공부하는 이라면 누구나 해당 쟁점에 대한 학설과 판례를 꿰고 있어야 하는데, 그 중 대법원 판례 속에 있는 소수의견은 그 속에 담긴 법리 자체로 중요한 연구 소재가 된다. 소설 속에는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자 한때 정신 나간 것으로 보이던 소수의견들이 주류적 입장이 되었던 예가 언급된다. 이같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변하는 것은 소수의견의 입장만이 아니다. 대법원에서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는 경우도 일어난다.
"시대가 바뀐 거예요. 이제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겁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 달이 해가 되는 때. 늙은 나무의 그늘로부터 새싹이 돋아나는 때. 나는 가슴 한구석을 저리게 찔러대는 그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대법원에서는 하급심의 사실판단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대법관들은 하급심의 법률 판단의 적부만을 심사한다. 그래서 대법원이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는다면 그것은 새 법의 공포와 같다. ...... 새 패러다임. 새 시대. 내용과 관계없이 사건은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는 국면에 들어선다. 법학자들이 분주하게 법학 교과서의 개정을 준비하는 수순을 밟는다. 마지막으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법학자에게나 흥미로운 주제일 법도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인간에 대한 기대도 실망도 없이 담담히 법을 다루던 시선이 서서히 변화해가는 양상을 빚어내면서 법을 모르는 우리에게도 흥미롭게 읽힌다. 결국 '나'는 사람 위에 존재하는 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법 아래 있는 듯이 보였던 사람에 대해서는 숙명적인 비애감이 서려 있던 이전의 시각에서 탈피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나'는 아래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젊은 작가의 처녀작인데 한국 소설가로서는 생소한 법정소설임에도 거침없이 읽힌다는 점에서 작가의 서사적 역량이 느껴지면서 다음 작품이 크게 기대된다.
법은 사람 위에 있었다. 그건 법이 사람 위에만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이겼다. 법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