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장기하, 이기타, 목말라 순. 2005년 발매.)
청춘루저들이 내뱉는 키치
1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위와 같은 문장이 될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곡은 괴이하고 특이했다. 실험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되는대로 막 부른 곡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던 좋은 곡들에 대한 개념을 이들 전혀 신경 안 쓴다. 이 자식들, 음악을 장난으로 아나......라고 생각해보았으나, 그렇다고 진짜 기괴하게 부른 것은 아니다. 이들의 음악은 올라이즈 밴드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그리고 산울림의 접합 점에 서 있는 듯하다. 일단 보컬이 김창완의 툭툭 내던지는 보컬을 연상케 한다. 청년실업의 멤버 중에 장기하와 목말라가, 산울림을 존경한다는, 눈뜨고 코베인의 멤버라는 점, 그리고 눈뜨고 코베인의 깜악귀가 참여한(<포크레인>의 편곡을 도맡았다.)점을 상기해보자. 이해가 빠를 거다.
필자 같은 경우 오랜만에 듣는 재미를 가지게끔 한 앨범이었다. 이들의 음악을 여러 번 들으며 상상해 본 것은 이랬다.
1월 모일
전에 있던 직장에서 잘린 지 3년째,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두 달 째다. 이젠 씨발, 존내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먹다가도 초인종 눌르는 소리 들리면 옛날 같으면 튀어갈텐데. 요샌 밥 다 먹고 간다. 무슨 애벌레도 아니고 말이지. 어찌되었든 오늘 하루도 이렇게 쓸데없이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쓸데없이 보냈네>) 티비에는 무한도전이 맨날 손바닥 펼치고 무한도전을 외치는데......자기네들 프로그램을 내가 ‘무한시청’하는 건 알고나 있을까? 완전 캐발림되는 무한도전 보기 지겨워서 밖으로 나간다. 날씨 존내 찌뿌둥했다. 세탁하기 구찮아서 밀쳐논 빨래 냄새 나던데, 이젠 또 빨려고 하니까 눈 올 듯 한 날씨다.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가 생각난다. 예전엔 그나마 걔가 와서 가끔 빨레도 해주던데 이젠 빨레 냄새가 지독하다.(<냄새나요>) 젠장맞을. 어제 면접보러간 게 생각난다. 잠은 안 오고 시계 침은 또 왜 그렇게 째깍째깍대는지 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어 오는 듯했다.(<기상시간은 정해져있다.>) 결국 그 면접에서 떨어졌다.
라면 컵라면 몇 개를 사들고 내 방으로 돌아온다. 물론 주인아줌마 눈을 피해서. 공책에 적힌 낙서가 눈에 띈다. ‘생각만 내 맘대로 할수 있으면, 술 좀 작작 마시면 될 텐데 그게 안된다, 어려워.’(<어려워>) 군대 말년도 이렇게 존내 지루하진 않았다. 씨발. 그때 있었던 병장새끼가 생각난다. 나쁜 새끼, 지옥에나 가버려!(<♥바리의 관계를 종식시키자 pt 1,2>)그러고보니 그 때 수많은 애들이 같이 뺑이친 게 생각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드는 생각은 내가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탐한다. 나도 오늘 점심을 엄마가 있는 집에 가서 먹을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알렉산드리아, 말라리아, 소말리아, 불가리아를 중얼거리다 피식 웃었다. 요새 따라 이런 유치한 말장난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미토콘드리아>) 또 다시 드는 여자친구 생각. 걔는 이미 저 멀리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걔 어머니가 말했다. 못 만날거야라고 말한 어머니의 냉정한 말.(<못 만날거야>) 사진 속의 넌 어제와 똑같이 웃고 있는데......이상하다.(<넌 어제와 같은데>) 문득 3년 전에 쓴 일기가 생각나서 2005년 여름 때쯤에 일기장을 편다. 존내 덥고 귀찮아서 한동안 내쳐잤다라는 말과 전화 오는 데 귀찮아서 안갔다는 게 보이면서 人生有想이라고 씌어졌다. 꼴에 문자 쓴다.(<人生有想 2005>)
엄마의 잔소리와 밥을 존내 실컷 먹고 돌아오던 중 언덕 너머로 보이는 포크레인 한 대. 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데 저 포크레인은 내 맘을 삽질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포크레인>) 여자친구는 키가 컸었다는 생각이 우스울 정도로 뜬금없이 지나간다. (<wanted>) 집에 와서 티비를 보니 각종 뉴스들이 마치 무림고수들의 검처럼 난무한다. 누가 누굴 죽였네, 사기쳤네, 때렸네 등등. 정말이지 지옥같은 이 세상.(<이 세상은 지옥이다>) 여자친구를 만난게 잘못이다. 아차 하는 사이에 너무 쉽게 반해버렸다. 사랑을 어케 하는 지 몰랐던-그녀가 내 첫사랑이다-나로선 너무나 쉽게 반해버린 거다. 가까이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었다.(<쉽게 반해버렸네>) 아무튼 이 일기 처럼 쓰레기 같은 말은 아무 의미도 없고 의미가 발견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쓰레기가 되는 법. 4차원의 세계는 여기 있고, 4차원의 세계는 언제나 시작된다.(<4차원의 세계는 언제나 시작이다.>)
2
보도자료를 인용해보자.
우연히 지나가다 본 신문 기사가 느낌이 좋아 청년실업이라는 이름을 지은 순간부터 무예산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에 픽업되어 PC 기반 소형 음향실 '몽키바란스'에서 꽤나 착실하게 초쾌속으로 한달 동안 작업하여 음반이 나오기까지 일사천리였다. 그렇다고 막나가고자 하는 심뽀는 아니었다. 스타일 같은 것 이전에 노래하고픈 것이 있었고 때마침 통기타와 저예산 레코딩 기술과 값싼 리버브가 있었던 것이다.(보도 자료 중)
여기서 ‘스타일 같은 것 이전에 노래 하고픈 것이 있었고’에 밑줄 쫙 긋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스타일 이전에 노래 하고픈 것이 있었고, 그 무엇을 노래하기 위해서 그들은 스타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그 무엇이란 다름 아닌 독기다. 그룹 이름처럼 청년실업을 겪고 있는 세대들의 독기라는 것이다. 군대, 사랑, 취업으로 얼룩진 소위 88만원 세대들의 독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 독기도 되는 대로 막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말장난들이 난무하는 이런 음악들의 곡 짜임새가 의외로 탄탄하다는 것이다. 서정성이라든가 하는 면(<넌 어제와 같은데>)도 의외로(!) 지니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들은 여타 엽기 송과는 차별화가 어느 정도 되어있다. 이들의 곡은 노골적으로 자기 하고픈 말 다 쏟아 밷어내는 듯 하다. 그러나 그 말장난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일하지 못해 노는 즐김. 그것은 논다는 개념이라기 보단 고통의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악의 진정성이니 멜로디니 뭐니를 따지기 전에 주저리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그 통로가 음악이었을 뿐.
말장난이라고 하는 것이 청년실업이라고 하는 단어와 만났다. 그러면 그 말장난이란 개념은 남아도는 에너지를 이렇게라도 풀어야 살겠다는 절박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조금 유치 할지도 모를 이들의 음악은 그만한 독기를 가지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키치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장난이 한순간의 제스처가 된다면 그것 또한 음악을 장난으로 아는 태도가 될 터이다. 다음번엔 좀 노골적으로 비틀게 불렀으면 좋겠다. 성숙되지 않은 독기는 넋두리만 될 뿐이기에.
출처는 이곳입니다. : http://cafe.naver.com/musicy/3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