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 지음, 김영사
몽골 제국에 대해 연구한 자료를 모으면 아마 그보다 더 오래전에 있었던 로마 제국보다 규모가 훨씬 적지 않을까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몽골 제국은 유목민이 만들었고 말위에서 다스리는 것을 더 중시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동양 쪽에서 동양의 역사를 등한시했기 때문에 덜 발굴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물론 대다수 동양의 민족들이 몽골 제국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도 안 좋을 수 있고, 그래서 수치스런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한 것도 있을 것이다.
이전에 쓴 독후감 "유목민이 쓴 세계사"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책은 저자가 좀 독특한 서술 구조를 가지고서 현재의 우리처지와 연관을 지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서양의 관점에서는 몽골 제국은 단지 그때 그 시대의 상황이 몽골족을 자극하여 정복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이상기후는 중앙아시아 초원과 몽골 초원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몽골족이 목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정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칭기스칸이라는 탁월한 인물을 내리깔기 위한 서구의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저자는 일축해버린다.
시대적 상황이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특출하고 탁월한 영웅은 오히려 시대를 만든다. 서양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치는 케사르도 역시 시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서양사에서는 케사르를 전무후무한 탁월한 영웅으로 묘사하고 성인의 반열에까지 올리려고 한다. 성무 칭기스칸은 서양의 위대했던 전략 전술가이자 정치가이며 영웅이었던 케사르보다 더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 아니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그만큼 정복을 했던 군사전략가이자 지도자는 없었다. 그 시대까지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땅을 정복하고 유목민의 탁월한 힘을 결집하여 거대한 제국을 이룩한 성무 칭기스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뽑기에 손색이 없다.
이 책이 출판된지는 꽤 되었다. 이미 1997년에 읽었던 책이고 책장 어딘가 구석에 쌓여 있던 것을 우연히 꺼내어 다시 읽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른 만큼, 배운만큼, 머리에 든 생각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서 읽었을때의 느낌은 5년전에 읽은 그 느낌과는 좀 달랐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가 성무 칭기스칸의 위대한 업적과 역사적으로 중요한 치적을 쌓은 사실을 적었다고 알고 있었으나, 저자는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성무 칭기스칸을 묘사하고 있었다.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들쥐를 잡아 먹고 풀뿌리를 씹으면서" 저 아래의 삶에서 시작한 테무친이 사상 초유의 제국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말로써만 표현할 수 없는 장대한 힘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힘의 중심에는 진정으로 위대했던 인간, 테무친이 있는 것이다.
물론 화려한 주인공 뒤에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조연들도 있는 법이다. 불행히도 이 땅의 우리 민족들 역시 그 조연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울 따름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땅의 지도층은 전체 민중의 염원을 무시한 채로 자기자신들의 욕심만 채웠다. 몽골이 침입해 왔을때에도 전 국토가 유린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사병(私兵)집단은 꿍쳐두고 아무런 준비도 안된 민초들로 하여금 싸우게 만들었다. 말이 좋아 대몽항쟁 40년이지 일제 식민지 같은 상황도 아니고 시도때도 없이 쳐 들어와서는 살육을 하고 약탈을 한 이후에 되돌아가는 몽골군을 보면서 희망이란게 어디 있었을까 싶다. 그 와중에서도 산 속에 피난 들어가 있으면서 대몽 항쟁을 했다는 건 가히 이 땅의 민초들이 얼마나 질긴 목숨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시대가 주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하는가는 그 시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진보하였다 하여 천년 전이나 이천년 전이나 다를바가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급작스럽게 변하는 국제정세를 보면서 세계를 정복하였던 몽골이 생각나는 것은 어인 일일까. 지금도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궁상떠는 지도층을 보면서 또 한번 외침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