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읽's comment :
조금만 둔감하게 살면 얻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를 하는 책입니다. 의사 출신의 소설가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저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지혜를 정갈하게 다듬어서 내놓은 책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둔감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도 체계적인 얘기나 방법론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점에서 저자가 겪은 일상 속 에피소드들이 주가 되는 수필집이라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공통점이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의 바탕에는 반드시 좋은 의미의 둔감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관계나 세상에 대해 약방의 감초처럼 발휘되는 그의 둔감함은 대체로 자신의 본래 재능을 더 크게 키우고 자신의 능력과 힘을 널리 퍼뜨리는 최대의 원동력이다.
<실낙원>의 저자로 유명한 이 책의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는 이 책을 통해 사람을 들여다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 물론 그것은 '얼마나 둔감한가'이다. 사람을 보는 관점으로 참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유독 둔감도를 본다는 것은 너무 평범하고 일상 속의 것으로 여겨져서 무심코 간과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순간 그 간과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어쩌면 현실에 아주 잘 들어맞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정신이 번쩍 든다. 가만히 보면 '둔감'이란, 저자가 소설가로서 사람들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그 통찰을 평이한 단어로 옮긴 결과일 것이다. 또한 이 책에는 의사- 약력을 보면 성형외과지만 -로서의 시각을 곁들인 부분이 적지 않다.
만약 평소에 둔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 "둔하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둔감'이라는 말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둔하다는 말을 신체적인 면까지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그 의미는 많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매사에 둔감하게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둔감해지는 게 좋을 상황에선 둔감해지는 게 자신의 재능이 묻히지 않고 드러내게 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문학에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비판에 취약한 탓에 이름 없이 사라져 간 후배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런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둔감력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그보다는 신체적인 차원에서의 둔감력에 대한 얘기가 이 책의 주를 이룬다. 애초에 저자는 신체적인 차원에서의 둔감력이 정신적인 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인간 관계나 남녀 관계에도 둔감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늘어놓는다. 특히 여성과 어머니의 강함에 대해 찬탄하는 내용은 인상 깊다.
"전 혈액량의 2분의 1 정도나 출혈한 것 같은데 살아났다니까요."
그러자 산부인과 의사는 별일도 아닌 듯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자는 출혈에 강하다네. 교과서에는 분명히 혈액의 3분의 1이 출혈하면 사망한다고 적혀 있지만 교과서에 적힌 대로 사망하는 것은 남자뿐이라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어나갈 무렵에는 이런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둔감력이란 걸 어떻게 키우라는 거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책이 다 끝나갈 무렵에 두세 문장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것(둔감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을 기를 수 있도록 갖가지 환경에 뛰어들어 강해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지나친 예민성은 스스로 자각하여야 한다. ...... 좋은 의미로 모든 일에 둔감하게 대처하고 무슨 일에나 호기심을 품고 대처해야 한다.
책 전체에 걸쳐 둔감한 것은 좋은 것이라는 얘기를 해놓고 그에 대한 방법론 같은 얘기는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허탈한 뒷맛을 남긴다. 사실 그 허탈함은 책 제목이 야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서 원제도 '둔감력'이다.) 지금까지 '~력'하는 식으로 새로운 힘의 개념을 소개하던 책들은 주로 사회과학계열의 실용서에 가까웠던 반면 이 책은 문학가의 수필집에 훨씬 가깝다. 제목부터 『둔감하게 살기』하는 식이었다면 그 내용에 한층 걸맞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