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 Scorched earth, black snow
앤드루 새먼 지음, 이동훈 옮김, 책미래
이 책은 타고난 이야기꾼인 저자 앤드루 새먼이 지은 한국전쟁 이야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영연방 제27여단의 미들섹스 대대와 호주 대대, 그리고 아가일 대대, 제41해병코만도들이며 그들이 1950년부터 1952년 사이에 한국전쟁에 파견되어 싸웠던 처참하면서도 가슴 저린 그리고 한국민의 참상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록된 "생생한: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은 한반도 거주민들의 비극이다. 그런데 이 비극은 우리만 비극으로 알고 있는게 아니다. 저자가 한국 여인과 결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이 전쟁에 참여한 영연방 제27여단 참전 용사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전쟁이 왜 비극이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정말로 참혹한 무기인 네이팜 탄에 의해 적군도 불에 탔지만 아군도 오폭 사고를 겪었다. 무시무시한 네이팜탄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아니했다. 직접 불에 타면 그 상태 그대로 새카만 시체가 되고 그 근처에 있으면 산소가 없어 숨 막혀 죽게 되는 무기인 네이팜 탄에 희생된 영국군들. 그리고 그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 봤던 생존 군인들. "이럴려고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독립했던가" 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한국민들.
전쟁은 "파괴"다. 아니 "소멸"이다. 두 차례 전쟁을 겪은 유럽도 다시는 그 아픔을 겪지 않으려고 온갖 조치를 취하는데,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저주를 받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적 비극을 초래한 김일성은 죽어서도 용서받아서는 안된다.
한번에 읽기 두터운 책이다. 그 정도로 저자는 정말 꼼꼼하게 서술했다. 지역이나 명칭 혹은 전투에 다소 사소한 오류는 있지만 그 오류가 이 책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내가 태어난 지역에서 1950년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민간인 오폭으로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희생되었다면 나는 현재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낙동강 전투, 사리원 전투, 군우리 전투, 장진호 전투가 나온다. 낙동강 전투와 사리원 전투는 그나마 이긴 전투지만 군우리 전투와 장진호 전투는 그나마 "지지 않은 전투"다. 하지만 중공군과 처참하게 싸운 기록이다. 41해병 코만도가 참전했던 장진호 전투는 UN군 최대의 업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참전 군인들의 눈으로 본 기록이다보니 전쟁이 주는 참상을 그 어느 책보다 생생하게 그렸다. 전쟁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힘의 대결을 하자는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