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주택
저자 : 유은실
출판사 : 비룡소
발행일 : 2023. 08.24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간만에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 한 권을 읽었다. 16년 가량 동화, 청소년 소설, 그림책 등의 작품을 써 온 유은실 작가 답게 문장이 쉽고 재미 있어서 잠깐의 휴식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수림이의 부모는 가족 등에 빨대를 꼽고 산다. 경제적인 면은 당연한 듯 가족에게 손을 뻗고, 그게 마치 자신의 능력이나 되는 듯 자아도취에 빠져 빌라촌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한다. 그랬던 그들이 가족들의 지원이 끊긴 후, 순례주택에 들어와 그렇게 무시했던 사람들과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한 기분이 드는 한편 나 또한 가족들에게 의지하며 살진 않았는지, 세속적인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인생의 짐을 타인에게 맡기고, 스스로 독립하지 못할 때, 사람은 삶의 경험을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진정한 어른도 될 수 없는 것 같다.
“순례 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왜?”
“태어난 게 기쁘니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우니까, 찝찝하고 불안한 통쾌함 같은 거 불편해할 거야. 진짜 행복해지려고 할 거야. 지금 나처럼.”
작가가 그동안 쓴 작품 속 인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는 ‘순례(巡禮).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순례(巡禮)는 순례자에서 따온 말이다. ’지구별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75세의 김순례 할머니. 그녀의 삶을 보며 나도 그녀처럼 현명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처럼 자신의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나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진정한 어른. 삶의 지혜란 작가의 말처럼, 삶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실패’보다는 ‘경험’으로 여길 수 있는, 부와 명예를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괴롬과 죄가 있는 곳’에서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삶 속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인 것 같다.
순례주택. 읽는 시간은 짧았으나, 여운은 길게 남는 소설이었다. 처절하고 우울할 수 있는 현실을 중2 여학생의 눈으로 가볍고 유쾌하게 다루면서도 책을 덮고, ‘너는 지금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니?’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