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대외정벌
임홍빈, 유재성, 서인한 지음, 알마
역사학자 3명이 조선의 대외정벌에 대해서 책을 썼다. 몽골이 침입해 온 이후
로 대외 정벌이 없었다고 "국정교과서"에서 떠들어 댔는데, 실상 조선만 하더
라도 몇 번 정벌을 했단다. 저자들은 그래서 대마도 정벌, 여진 정벌, 나선
정벌 등으로 책을 썼다.
대외 원정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보급도 보급이지만 해당 지역에 대
해서 정보가 없으면 피해를 크게 입을 수도 있다. 대마도 정벌은 전체적으로
평가를 했을때 성공적이었지만 원정 경험이 거의 없었던 조선군은 대마도 비
정규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크게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정벌군이 돌
아온 후 해당 전투 실패에 일부 지휘관들이 책임을 졌다. 해상 운송으로 보급
품을 수송했는데 몽골의 일본 원정때와 마찬가지로 태풍은 가장 위협적인 변
수였다. 그래서 단기간에 작전을 수행하고 신속히 후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여진 정벌은 역시 세종 때 진행하였는데 보급?은 문제가 없었으나 건주 여진
의 이만주가 지속적으로 침입을 해 와서 세조때나 되어 겨우 4군과 6진을 완
성하여 지금과 유사한 국경선을 만들었다. 문명을 형성하지 못하고 살던 여진
족이 임진왜란 시기에 크게 융성하여 만주족으로 개칭하고 후금 또는 청을 세
워서 조선 후기를 지배했다. 만주족은 "문수보살"의 "문수" 만주어라고도 하
지만 건주 여진의 추장 이만주라고도 한다.
나선 정벌은 동진해오던 제정 러시아 군과 싸웠는데 위 두 원정에 비해서 제
대로 된 해외 원정이었다. 비록 작전권은 청군이 가졌지만 어찌보면 조선군이
가장 멀게 원정을 하였던 바다. 북벌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효종 시절이었던
바, 그 후로 조선은 대외 정벌이나 원정은 꿈도 못 꾸는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