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 대기근
멍레이, 관궈펑, 궈샤오양 외 엮음, 고상희 옮김, 글항아리
중화민국 31년, 서력 기원 1942년에 허난(하남)성은 가뭄으로 인명 피해가 매우 크게 났다. 어림 잡아서 3백 만명이 넘게 기근과 관련하여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저자들은 많게 잡으면 5~6백 만명이 넘는 피해가 났을지도 모르는 대기근에 대해서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한탄하여 이와 관련한 기록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책을 지었다고 한다.
청일 전쟁 이후로 일본제국은 끊임없이 중국 대륙을 노렸다. 제1차 대전이 발발했을때에는 독일 제2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청도지역을 무단으로 점령하거나 러시아 내전에도 껴들었다. 또한 중화민국 출범 후 군벌들 간 다툼이 발발한 것을 기화로 만주 벌판으로 진출하였으며 1930년대 만주 괴뢰국을 세운 것도 모잘라 상해를 공격하여 남경까지 진출하였다. 중국 북방에서는 관동군이, 남방에서는 일본 해군과 육군이 들이쳤는데 방대한 전선을 유지할 자원이 부족하여 1941년에는 미국까지 공격하였다. 1942년은 이런 흐름이 쭉 내려 왔었고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된 허난성은 지금으로 보면 중국의 중심부에 위치했지만 반쯤 일본 군대가 진출한 상황이었다. 서안 사건으로 인해 제 2차 국공합작이 이뤄진 상황에서 장개석 정부는 일본 군대와 싸우지만 그게 또 보면 말 그대로 하지는 않은 듯 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기근의 자연적 원인은 일본 군대를 막기 위해서 황하 둑을 터트린 것으로 본다. 황하가 범람하면서 생태계가 무너졌고 또 갑작스레 메뚜기 떼가 창궐했다고 보았다. 물론 이때의 대기근은 자연 재해라기보다 인재라고 봄이 타당하다. 재방을 폭파한 것도 물론이지만 비옥한 허난성을 마구잡이로 약탈한 것이 일본 군대 뿐만 아니라 중국 국민당 군대였다는 것이다. 너무도 많이 약탈을 하다보니 메뚜기와 가뭄과 홍수 외에 국민당 군대도 그 원인이라고 하지 않은가.
중화인민공화국 하에서 나온 책이라 모든 걸 국민당 정부에 덮어씌우면 지금의 중화민국이 많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장개석 군대가 중국 인민의 지원과 지지를 받은게 아니라는 건 다 밝혀졌으니 여기서 대기근의 원흉과 자연재해로 인한 학살을 뒤집어 쓴다 한들 그 죄가 눈에 띄게 커지는 건 아닐 것이다. 백성을 죽이는 정부는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