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 8일간의 외교 전쟁
세르히 플로히 저자(글) · 허승철 번역
역사비평사 · 2020년 03월 31일
정말 대단한 책이다. 여러모로 정말 대단한 책이다.
우리에게는 남북 분단과 신탁 통치 결정을 한 얄타회담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 세 강대국이 모여 협의하고 결정을 내린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저자가 그 앞의 카이로, 테헤란 회담이나 그 뒤의 포츠담회담보다 얄타회담을 주목한 이유가 있다. 아마 첫째는 루즈벨트가 참여한 마지막 회담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 미국과 소련이 서로 제갈길 가게 된 결정적인 회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외교사라든가 협상론 그리고 정치학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기에 저자가 주목한게 아닐까 싶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듯 한 저자가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고서 크림 반도에서 일어난 얄타 회담을 주목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책 중간중간에 스탈린과 처칠에 대해 은연 중 혹은 노골적인 반감을 보였는데 아마 저때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단한 책이다. 그 첫째 이유는 "방대한 자료"이다. 구 소련 붕괴 이후 기밀해제된 자료까지 모두 조사를 했다. 이 정도 방대함이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이 자료들은 독자들이 그간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많이 바로잡아 주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스탈린"에 대해 그리고 "구 소련의 정책"에 대해서 많이 보여 주었다.
둘째로 꼽자면, 회담을 했던 8일 아니 회담 이전부터 회담 이후 이야기까지 모두 담았다. 거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얄타 회담의 결과만 보여주었는데, 이 책에서는 결정 과정과 이해 관계 등 모두를 보여주었다. 그 어느 책도 보여주지 못한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특히 첨예하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 강대국이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어떤 입장을 취했고 어떻게 의사 결정을 변경하였는지도 보여주었다. 외교나 협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인 책이다.
셋째로, 영국이 지고 미국이 부상하게 된 계기를 알 수 있다. "국제 기구"를 향한 루즈벨트의 신념과 의지가 책 내내 나와 있었다. 미국은 고립주의를 벗어나서 국제 연맹을 벗어난 새로운 기구를 향했는데, 이상하게도 영국은 "제국주의 시절"을 동경하면서 식민지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찌보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진정한 대인배는 루즈벨트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영국의 처칠과 구 소련의 스탈린에 대해서 아주 냉정하게 비판을 했다. (그 둘의 담합 결과가 현재의 정치상황이라고 본 듯 하다.)
세 거두의 대화에는 중점을 두었는데 실무자들인 외무장관들의 결정 과정은 생략한 점이 아쉬웠다. 하긴 그 내용까지 담았으면 아마 두권 정도 나왔겠지. 그렇다 해도 이 책의 가치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생생한 현장감으로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엄청난 책이다.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이다.
사족으로, 회담 당사자 중 하나인 영국군인들은 잠시 짬 났을때 세바스토폴 근처에 있는 "바라클라바"를 방문했다고 한다. 거기는 19세기 말 크림전쟁때 러시아 포병에 영국 경기병대가 몰살 당하다시피한 곳이었다. 같은 장소를 바라보면서 러시아인들은 나치의 침공에 입은 피해를 이야기했다는 것도 아이러니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