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역동적 고려사

역동적 고려사

 

이윤섭 지음, 필맥

 

간만에 시원한 책을 보았다. 이처럼 자세한 고려사라면 국사책에 고려사 부분을 이 책으로 대체하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고려 건국에서 멸망까지 이 책만큼 깔끔하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사건 나열식 역사 서술은 자칫하면 독자를 암기 위주의 역사로 몰아갈 수 있다. 역사는 암기가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고려 자체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나라별 동향까지 상세히 설명을 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을뿐만 아니라 머리 속에서 나라별 상황까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주체적인 고려사를 생각할때,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군사 정권하에 방영되었던 TV 사극에 대해서 다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공민왕이나 우왕의 경우 일반 국민들에게는 매우 무능한 왕이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받았을때 임명되었던 "충"자 돌림 왕들도 매우 허약하였다고 인식해 왔다. 그런데, 그 모든 내용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점이라는 게 너무 억울할 뿐이다. 고려 왕조가 수없는 외침 속에서도 그렇게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바로 잡으려 했던 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고려와 고려 왕조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고려사를 외침에 시달린 역사로 평가하고 있다. 단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은 수동적 역사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군사를 동원하여 침범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외교력으로 대처하기도 했던 나라, 작금의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매달릴려고 하는 정치인들에게 왜 이 책이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정통성 문제에서 결코 떳떳하지 못한 조선이 고려왕조실록을 편찬하면서 왜 수동적 역사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는지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고려는 정통성 면에서 매우 떳떳할 뿐만 아니라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태생 자체가 역성혁명이었던 조선 왕조가 사대교린 외교라고 하면서 정통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중국 왕조에 기댄 것에 비한다면 고려사를 다시 인식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조차도 피곤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인 "관련 자료" 부족으로 이 책에서도 어느 정도는 "추측"을 하고 있다. 기실, 고려사는 조선 왕조에서 편찬한 "고려왕조실록"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왕조가 만들어 놓은 부유물을 완전히 걷어낼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추측"을 해야 할수 밖에.

 

책 한권으로 무엇이 바뀔까마는, 이 책을 읽으면 문약했던 조선이 우리 땅에 존재했던 왕조의 전부라고 인식했던 과거를 벗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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