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 병자 호란과 동아시아
한명기 지음, 푸른역사
조선시대 양대 치욕은 왜란과 호란이다. 왜란은 와서 싸움만 했지 점령을 하지 않았으니 전란으로 인해 피해가 컸는데, 호란의 경우
전란이 끝나고도 시달렸으며 청이 멸망할때까지 영향력에 들어갔으니 왜란에 비할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가지지만 한 나라의 임금이 다른 나라 지배자에게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한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심지어는
삼전도비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감정적으로 보면 답답하지만 되풀이하지 않을 역사를 보는 관점이라면 이 책은 상당히 잘 되어 있다. 정묘년과 병자년에 일어난
"사실"은 동아시아의 정치적인 역학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전과 그 이후 과정을 보노라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저자는 울분이 끌어올랐을 수도 있고 미화를 하고픈 욕심이 생겼을 수도 다. 명분과 복수심 때문에 반정을 일으킨 인조가
왕권 유지를 위해서 백성을 도륙하고 죽음으로 내 몰게 되며 임란 이후 피폐한 민심도 돌보지 못하고 청에 또 왜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작금 상황과 어찌 그리 유사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은 임진년에 끝을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머리가 되든 크게 영향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썩어서
뭉개질 정도가 된 기득권 층과 왕권을 교체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래봤자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다 짊어지겠지. 정부의 존재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