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투쟁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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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1 16:52
왕의 투쟁
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참 재미있는 책이다. 무슨 책이든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의 문제의식은 참으로 신선하다. "조선시대 왕은 신하들과
어떤 관계였을까". 이 의문에 저자는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를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얼핏 보자면, 세종과 정조는
조선시대 손꼽히는 성군이었고 연산군과 광해군은 폭군으로 유명한데 어떤 연관성이 있길래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까 싶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생각이 남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업적을 쌓았기에 성군" "패륜무도하기 때문에 폭군"이라는
공식을 버렸다. 대신에 조선시대에 절대권력 "왕"과 사대부 "신하" 사이에 어떤 밀고 당기기가 있었는지 그것을 중점적으로
해석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신하들과 학습을 같이 하는 "경연" 제도가 있었는데 때로는 신하들이 이를 이용하여 왕을 견제하기도
했고 또 반대로 왕이 신하들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네 왕들은 이 밀고당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또 실수한 적도
많았다. 이제까지 훌륭하고 똑똑한 왕으로만 알았던 정조가 사실은 너무 똑똑한 관계로 정치를 우습게 알아 말년에 실패했으며,
세종의 경우는 그 반대로 모르는 척 하여 신하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지나치게 폭압적인 방법을 이용한 관계로
오히려 신하들에게 배신 당한 경우였다.
사물을 보면 무엇이든 양면성이 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은 모두 이분법이어서 "누구는 성군 누구는 폭군" "누구는 간신 누구는
충신" 이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사고를 버리고 예전에 알던 내용도 다시금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