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희랍어 시간』, 한강

맛있는두유 0 5,473 2012.05.29 22:57


일일일읽's comment :


시처럼 읽어야 제맛인 소설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와중에, 문장마다 단어들의 배치를 음미하는 시간이 마치 책 제목 그대로 낯선 언어인 희랍어를 공부하는 시간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색다른 독서 경험을 제공해주는 책입니다.



희랍어 시간 대표 이미지



처음에는 책 내용이 영 아쌈아쌈해서 계속 읽어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꾹 참고 계속 읽어 나가는 동안에는 정갈하게 정돈된 언어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당최 소설가가 어디까지 가려는가 하는 의혹 어린 불편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채 하루가 가기도 전에 나는 이 책을 다시 집어들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시원하게 내리 읽히면서 단어들이 놓인 자리들을 놓고 음미할 수 있었다. 먼젓번과 달라진 것은 이 소설을 대하는 관점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이른바 서사적 문학인 소설을 읽는다는 자각이 있었다. 소설에는 모종의 사건들이 전개된다. 이 책 『희랍어 시간』에도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전개되는 양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작품에서 주를 이루지는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상상력을 지나치게 동원하여 우리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더듬을 수도 없는 영역을 무리하게 더듬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한 시도에 대한 인상은 나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받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하찮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구절이 압권이다.



문학 텍스트를 읽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어. 감각과 이미지, 감정과 사유가 허술하게 서로서로의 손에 깍지를 낀 채 흔들리는 그 세계를, 결코 신뢰하고 싶지 않았어.



마치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받은 느낌을,가도 잘 안다는 듯이 선수 쳐서 기술한 듯하다.가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니 일순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신 작가가 전달하려는 어떤 인상 내지 이미지를 포착한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다시 말해 소설을 읽는 대신 시를 감상하는 태도를 취한 바, 그때부터 이 소설은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시로 인식되자 곧바로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채로운 속살 중 하나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에 대한 훌륭한 소개가 될 수 있을 것인데, 우선 어느 특정 페이지에 있는 표현들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흑판에 적힌 문자들을 곰곰이 올려다보다가 그녀는 연필을 쥔다.


기억만으로 선득한 그 감각을 잇사이로 누르며 그녀는 쓴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전단지와 세금고지서 들이 꽂혀 있는 우편함을 지나쳐, 엘리베이터 옆에 육중하게 버티고 선 일층 현관문에 그녀는 열쇠를 꽂는다.



이렇듯 그녀의 행위에 대한 묘사에는 일관성이 있다. 누군가가 그녀를 지켜보는 듯한 모양새인데, 그것은 사실 그녀 자신의 시선이다. 그 시선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는 물속에서 어른어른한 물 밖의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딱딱한 벽과 땅을 타고 다니는 그림자가 되어 거대한 수조에 담긴 삶을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것 같다.



서사를 의식하는 대신 시를 감상하는 태도를 취할 때, 비로소 그녀의 행위 속에 그녀의 시선이 배어 있음이 드러난다. 시인이 자기 눈을 도구 삼아 어떤 인상을 전달하려 데에 그 시인의 의도나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 따위의 것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인상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과는 좀 다른데, 책 뒷표지에 있는 소개 문구가 시처럼 읽어야 하는 이 소설의 특색을 잘 포착한 듯이 보인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실로 사람이 아닌 그 기척이 주를 이루는 색다른 소설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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