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년 기자회견 (사진=MBC 캡쳐)지난 1월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덩샤오핑의 유명한 흑묘백묘 구절을 인용하며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재명에게 말려드는 첫 번째 단계는 그의 말을 해석하려는 데 있지만, 기자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대표의 상징 동물은 친칠라, 친칠라는 대표적인 쥐목(설치목, Rodentia)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15분 후 그는 “제가 말씀드린 건 흑묘백묘는 아니고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였습니다”라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재명과 닮았다며 그의 상징 동물로 자리잡은 쥐목 동물 친칠라. '이재명'과 '친칠라'를 합쳐 '잼칠라'로 불린다. (사진=네이버 블로그 @koolap, X @jamchilla_doll, 예스24 캡쳐 )‘잼칠라’이재명 대표의 상징 동물인 친칠라(일명 ‘잼칠라’)는 지난 대선 당시 여초 커뮤니티 발 밈으로 처음 알려졌다. 이후 친명 성향 커뮤니티에서 확산되다 대선이 끝난 2022년 3월 15일부터 뉴스 포털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설치류 일종인 친칠라(몸무게는 600g 정도라고 한다)의 사진에 안경을 씌운 ‘잼칠라’는 지지자들이 부르는 애칭이자 상징 동물로 순식간에 자리 잡았다. 지지자들은 안경을 씌운 친칠라 인형을 만들어 이 대표의 행사장에 비치했고 이 대표와 친명 국회의원들은 이를 포용하며 인증사진을 찍기도 했다.

친칠라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상징 동물이다. (사진=디씨인사이드, X @cdsljmm 캡쳐)정치적 상징 동물정치에서 상징 동물은 중요한 이미지 형성 도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보통 독수리, 사자, 용, 호랑이, 곰 같은 상위 포식자를 상징으로 삼아 강인한 지도력을 강조하곤 했다. 물론 미국 민주당의 당나귀처럼 상대의 조롱을 역이용한 사례도 있지만, 스스로 쥐목 동물을 선택하거나 포용했던 정치 집단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친칠라 이재명 대표가 그토록 원하는 대통령 직위의 휘장은 봉황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민주공화당 시절 박정희 후보는 황소를 상징 동물로 사용하며 근면함을 강조했다. 남북 평화를 추구했던 김대중 후보는 평화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로고로 비둘기를 사용했다.
임기 중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 사이 ‘호랑이’로 자주 언급되었다.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자연에서 코브라 뱀과 싸우는) 벌꿀오소리에 빗대 ‘문꿀오소리’라 자청했다. 문재인정부 최장수 국무총리로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로 인식됐던 이낙연 전 총리 캠프에서는 종종 사자를 사용해 이낙연의 진중한 이미지를 드러내려고 했다.
물론 한국 정치사에 쥐가 등장한 적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친칠라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쥐박이’라 부르며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떠올려 보자. 부정이 긍정으로, 조롱이 애칭으로 바뀌는 이 전환마저도 이재명을 닮았다. 정치인이 상황과 유불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니 그 지지자들도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친칠라 이미지를 통해 이재명과 지지자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적 상징 동물은 독수리, 사자, 곰, 호랑이, 용, 봉황 같은 상위 포식자의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부분 쥐를 잡아먹는 동물이다. (사진=레딧 캡쳐)‘아기 당대표’의아한 것은 ‘잼칠라’ 뿐이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은 그를 종종 ‘아기 당대표’라 부르기도 한다. 171석 거대 야당을 이끄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표현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최측근 김진욱 비서조차 홍보영상에서 “우리 후보님은요, 정말 무섭습니다”라고 직접 밝혔던바, ‘아기 당대표’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 표현이다. 정치 심리적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괴취향’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보통 지도자는 강한 결단력과 책임감을 추구한다. 반면 작은 동물과 아기는 보호해야 할 존재들이다. 비판받을 일 없고, 책임지지도 않고, 도덕적 의무에서도 비켜 서 있는 존재들이다. 지지자들이 정치인을 그의 직책이나 인물로 보는 것이 아닌, 무조건 지켜야 할 연약한 존재로 프레이밍 하면, 정치인의 책임은 흐려진다. 그들은 그를 무조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변명거리를 찾아준다.

지지자들은 그를 '아기 당대표'라고 부른다. (사진=X @mingming2nacho 캡쳐)끊임없는 피해자 서사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 이재명 대표의 정치 서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피해자’ 키워드다. 그는 언제나 핍박받고, 탄압받고, 오해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패배해도, 실패해도, 책임을 지는 대신 더 높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본인의 과오로 대선에서 패배한 후(2022년 3월) 자숙은커녕 민주당 텃밭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었고, 지휘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후(2022년 6월) 당대표가 되었다.



이재명은 항상 국민을 지켜주는 리더가 아닌, 국민이 지켜줘야 하는 정치인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 해왔다. (사진=SBS 캡쳐)‘이재명 월드’의 순환 논리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과 피해자 서사는 자주 연결된다.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타인을 가해자로 만들 수 있다.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유발하기도 하는 심리 조종 기술이다. 이 기술이 작동하면 지지자들은 이성을 거두고 감정적으로만 반응하게 된다. 결국 지도자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력한 정서만 남는다. 피해자 서사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이재명의 정치적 생존 전략이다.

이재명 월드의 순환 논리는 ‘이재명은 이재명이니까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 오류에 기반한다. (그래픽=팩트파인더)결국 정치 혐오 전략이렇듯 ‘이재명 월드’에서는 지도자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는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국민이 한다”는 그의 말도 이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 대신 국민이 지도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 역전된 논리는 결국 정치 혐오로 귀결된다. 대의 정치와 리더십의 본질적 의미가 사라졌고, 모두가 불쾌한 감정만 남은 채 정치를 혐오하게 되었다. 이재명은 오늘도 방탄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외투 안 방탄복 입은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