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에 걸린 이재명… ‘공천 내전’ 확산 땐 리더십 휘청 [허민의 정치카페]
■ 허민의 정치카페 - 민주당과 승자의 저주
공천 놓고 ‘친문 구주류 대 친명 신주류’ 집안싸움 치열… 거대 정당 공천 파열음에 중도층 동요
‘통합과 혁신’ 선거 공식 잊은 민주당…‘문명 충돌’로 지지층 이탈 땐 지도체제 변동 올 수도
제22대 총선 투표일을 50일 앞둔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휘청거린다. 공천 파열음에 따른 중도층의 동요가 특히 눈에 띈다. 국회로 대거 진출하려는 친명 도전세력이 비집고 들어가기엔 친문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거세다. ‘승자의 저주’는 친문과 친명 간 ‘문명 충돌’로 파괴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818호실 논란
민주당은 4년 전 21대 총선에서 ‘너무 많은’ 의석을 얻었다. 수도권의 경우 121석 가운데 100석가량이 민주당 영토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친문 구주류와 이를 빼앗으려는 친명 신주류 간의 집안싸움이 본선보다 치열할 정도다.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가장 큰 동기는 당의 내분이다. 민주당은 바로 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비례대표 선거제도를 연동형으로 유지하면서 민주당 몫의 파이가 줄어들자 문명 충돌은 더 험악해졌다. 공천 갈등이 내홍을 넘어 내전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토양이다.
‘너무 많은’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공천은 승자의 저주를 분명히 드러내는 장이 돼버렸다. 지금 민주당 공천에는 세 가지의 논란이 있다. ①밀실 사천(私薦) ②명심(이재명 의중) 개입 ③공천 불복. 집권여당 국민의힘 다선·중진 인사들의 극적인 험지 출마 선언이 이어지는 시간에 민주당에선 ‘밀실 사천’ ‘비선 공천’ 논란이 터져 나왔다. 이재명 대표와 친명 인사들이 심야에 이 대표의 의원회관 방 818호실에서 모여 현역 의원 낙천자 명단을 추리는 ‘컷오프’ 회의를 했다고 알려지면서다.
졸지에 컷오프 도마 위에 오른 노웅래(서울 마포갑)·기동민(서울 성북을)·이수진(비례) 의원이 반발했다. 노 의원은 818호실 모임에 대해 “명백한 밀실 논의이자 시스템 공천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현역 의원들이다. 이들의 메시지는 이 대표를 겨냥한다. 사법 리스크로만 따진다면 1주일에 두세 번씩 법원에 출두하며 다수의 재판을 받는 이 대표가 컷오프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재명식 공천’은 자기만족을 위해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미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닮았다.
◇승자의 저주
지난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17%포인트 차로 국민의힘을 누르고 압승할 때에도 당내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이 대표 역시 보선 승리를 확인한 그날 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번 선거를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입니다. 한때 집권당이던 민주당의 안일했음과 더 치열하지 못했음과 부족함을 다시 한 번 성찰합니다.”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을 경계한 것인데, 말뿐이었다. 반짝 효과에 취한 당내에서 ‘200석 압승론’이 횡행했고, 이 대표도 이에 편승했다. 이 대표가 장악한 민주당 공천 지도부가 찐명 대거 국회 진입작전에 몰두하면서 불출마 압박을 받거나 공천에서 배제된 인사들이 줄줄이 반발·불복하고 있다.
4선 친문 출신의 국회부의장 김영주(서울 영등포갑) 의원은 19일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통보를 받자 “모멸감을 느낀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송갑석(광주 서갑), 홍영표(인천 부평을), 이인영(서울 구로갑) 의원 지역구에서는 이들의 이름을 빼고 친명 인사만 넣은 여론조사가 실시됐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해당 조사를 돌린 기관은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2013년) 여론조사 용역에 참여한 업체로 드러났다. 홍 의원은 “(이 대표의) 비선 조직에서 조사한 거냐”고 반발했다.
앞서 이낙연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 소속 현역 3인방은 탈당해 제3 지대 신당을 창당했다. 3선의 전병헌(서울 동작갑)·유승희(서울 성북갑) 전 의원도 ‘이재명 사당화’를 비판하고 탈당했다. 곳곳에서 ‘친문 진영에 대한 친명 그룹의 광범위한 권력투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민주당은 혁신 공천과는 반대로 밀실 사천 논란을 낳으며 뒷걸음치고 있다. 승자의 저주다.
◇혁신과 반혁신
선거는 곧 통합을 토대로 하고 혁신을 깃발로 해서, 약점을 보완하고 중도 확장을 꾀하는 간단없는 여정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 공식을 잊었다.
향후 정국 향배를 결정할 4개 시나리오는 ①여야가 혁신 경쟁을 벌이는 것 ②여당은 혁신, 야당은 퇴행하는 것 ③여당은 퇴행, 야당은 혁신하는 것 ④여야가 퇴행하는 것이었는데, 민주당은 ②번 시나리오에 가깝다.
문명 충돌은 문재인 정권의 상징과 같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거취를 놓고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던 친명 좌장 정성호 의원이나 정치학계의 원로 학자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윤석열 정권 탄생 책임론’을 들어 임 전 실장의 불출마를 압박한 건 향후 이재명 대권가도에서 친문 경쟁자를 조기에 제거하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친명 초선 A 의원은 “대선 트로피를 얻으려다 집안을 풍비박산 낼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 공천은 큰 뒤탈 없이 진행 중이다. 여권 중진 B 의원은 “국민의힘 공천에는 사천이 없고, 윤심(尹心) 개입이 없고, 공천 불복이 없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낙동강 전선 탈환을 위한 영남권 다선·중진들의 험지 출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원내대표를 지낸 김성태(서울 강서을) 전 의원 컷오프로 인한 후유증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용산 참모 출신들에 대한 특혜 시비도 비교적 무난하게 차단했다.
한동훈 체제의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가 가져다준 ‘기저효과’까지 톡톡히 누리는 중이다. 유권자들은 이제 여당과 용산, 한동훈과 윤석열을 분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니발의 예언
기원전 3세기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한 한니발이 어떻게 패했는지는 리비우스가 미려한 문체로 남긴 ‘로마사’에 잘 담겨 있다. 한니발은 로마와의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예언 같은 말을 내뱉는다. “강대국이 언제까지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조국 카르타고의 내분으로 참패한다.
대한민국 의회 권력을 장악한 이재명 대표도 승자의 저주와 마주하고 있다. 공천 내전이 확산하고 중도 이탈이 가속하면 지도력 약화는 필연적이다. 승자의 저주를 막지 못한다면 민주당 지도체제 변동 논의가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의원들의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는 벌써 ‘이재명 2선 후퇴’를 요구하는 공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 설명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잘라 죽이고 작으면 늘여서 죽였다는 그리스신화의 악당. 자기 이익을 위해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는 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함.
‘승자의 저주’, Winner’s Curse는 전쟁(경쟁)에서 이겼지만 과도한 출혈로 상당한 후유증을 겪는다는 것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 ‘이카루스 패러독스’나 ‘피로스의 승리’와도 같이 쓰임.
■ 세줄 요약
818호실 논란 : 공천 파열음으로 더불어민주당이 휘청. 이재명 대표가 친명 인사들과 자신의 의원회관 방에 모여 낙천자 명단을 추리는 ‘컷오프’ 회의를 했다고 알려지면서 ‘밀실 사천’ ‘비선 공천’ 논란 터져 나와.
승자의 저주 : 21대 총선에서 ‘너무 많은’ 의석을 얻은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국회에 진입하려는 친명 세력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친문 세력 간 ‘문명 충돌’이 극에 달해. ‘승자의 저주’는 그 파괴적 속성을 드러내는 중.
혁신과 반혁신 : 선거는 통합과 혁신으로 중도 확장을 꾀하는 간단없는 여정.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 공식을 잊어. 승자의 저주를 막지 못한다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체제 변동 논의가 불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