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63661?sid=104
(파리=연합뉴스) 추왕훈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파상적인 제재 공세를 펼쳤던 유럽 각국이 러시아를 대체할 가스 도입처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겨울이 점점 다가오자 수세에 몰리고 있다.
유럽의 '약점'을 간파한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 삼아 역공을 가해올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가스 공급 전면 중단 가능성이나 '비상조치' 단계 격상에 관한 언급이 잇따랐다.
페이스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올겨울 가스 수출을 전면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유럽 국가들에 가스 수요 감축과 원자력 발전소 가동 유지 등 대책을 촉구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러시아가 가스관 '유지 보수 문제'를 이유로 유럽 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인 것은 더 규모가 큰 수출 감축 조치의 시작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롤 사무총장은 "유럽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겨울에 가까워질수록 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수출 감축의 의도는 유럽이 가스 저장고를 채우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겨울철에 레버리지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같은 날 독일에서도 비슷한 경고음이 나왔다. 로브레트 하베크 독일 경제부 장관은 베를린 외곽에서 열린 에어쇼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 상황을 볼 때 우리는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가스 공급을 더 큰 폭으로 줄일 것이라고 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베크 장관은 이렇게 되면 정부는 현재 1단계인 비상조치를 2단계로 격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비상조치 격상이 이르면 이번 주에도 단행될 수 있다고 전했다.
비상조치 2단계가 시행되면 에너지 기업들은 비용 증가분을 가정이나 기업에 전가할 수 있고 가스 소비 감축을 위해 석탄 발전량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유럽연합(EU)도 러시아의 수출 물량 감축에 따른 가스 수급난에 대처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석탄 발전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의 엘리나 바르드람 국제문제 및 기후 재정 담당 집행위원 대행은 한 포럼에서 "EU의 2030 및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변함없지만 우리는 일시적으로 석탄 사용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스프롬(러시아 국영 가스업체)의 갑작스러운 공급 감축이라는 무도한 행위를 보면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모든 조치는 일시적인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러시아는 최근 자국에 대한 제재로 가스관 시설 수리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이유로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을 통해 독일에 공급되는 가스 물량을 60%나 감축했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불가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으로 가는 가스도 확 줄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잇달아 도입하면서도 가스만은 예외로 남겨둔 채 러시아를 대신할 수입처와 대체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 애를 썼으나 당장 효력이 있는 해법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그동안 유럽 가스 수요를 일부나마 충족해온 미국 텍사스 연안의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폭발 사고로 가스 수급은 더 빡빡해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EU 집행위가 각 회원국에 11월까지 가스 저장고의 80%를 채우라고 권고했고 독일은 같은 시점까지 저장률 9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러시아의 가스가 없이는 이러한 목표을 이루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투자업체 인베스텍의 네이선 파이퍼 애널리스트는 "유럽이 가스 저장 목표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매우 비싼 값을 치르는 것뿐"이라면서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더 많은 값을 쳐 주기 때문에 아시아를 제쳐두고 이들 국가에 LNG를 실어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값을 더 치르더라도 들여올 수 있는 물량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공급처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러시아가 가스 수출을 중단한다면 유럽 국가들은 경제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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