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 Global

원자력과 그린에너지의 절충 모색하는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

- 임기 초부터 탈원전에 대한 신중론 제시한 마크롱 정부 -

- 탈탄소 사회 건설 위해 원자력에너지와 그린에너지 모두 중요하다는 비전 제시 -  

    


                                  

지난 10월 12일 프랑스 엠마누엘 마크롱 대통령은 300억 유로 규모의 미래산업 육성 투자 계획 ‘France 2030’을 발표했다. 당장 2022년부터 5년동안 시작될 이번 투자계획에서 가장 많은 액수를 배정받은 영역은 에너지 분야로, “탈탄소 프랑스 건설”을 위해 총 80억 유로의 투자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혁신적 원자로 개발, 그린 수소에너지 리더 국가, 산업 전반의 탈탄소화 이룩을 주요 과제로 삼고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처럼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미래 산업으로 에너지 산업, 그 중에서도 원자력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프랑스의 탈원전, 그린에너지 개발 기조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파격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    

 

프랑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원자력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의 원자력 의존도는 70.6%로 우리나라 29.6%, 러시아 20.6%, 미국 19.7%에 비해 훨씬 높다.

 

주요 국가의 원자력 의존도

(오른쪽부터 프랑스, 대한민국, 러시아, 미국, 중국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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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Le Monde

 

그러나 프랑스는 올랑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2025년까지 원전 의존도를 75%에서 50%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녹색에너지 전환 법’을 제정한 이래로 탈원전, 대체 에너지 개발을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로 삼았다. 당시 정부는 프랑스 내 가장 오래된 페센하임(Fessenheim)의 대규모 원전 폐쇄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노후 원전을 폐쇄하는 계획을 수립하며 탈원전에 박차를 가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기준이 마련된 탈원전 정책에 따라 프랑스에서 원자력 발전을 통해 생산되는 전기량은 2015년부터 감소세를 보여왔다.

 

프랑스 원자력 에너지 발전 양

(단위: T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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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Les Echos

 

그러나 마크롱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라는 기조는 지키되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견지해왔다. 탈탄소화를 위해 화석에너지 의존도는 낮추는 한편, 원자력 발전 감축은 반드시 에너지 주권을 유지할 수 있는 속도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원자력 의존도 50% 달성 시기를 기존의 2025년에서 2035년으로 늦추기로 하였다. 대형 원전의 폐쇄 시기 역시 재검토해, 당초 2017년으로 예정되었던 페센하임 원전 폐쇄 역시 2020년 6월에서야 이루어졌다.

마크롱 정부는 최근 한발 더 나아가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이 필수라고 보고, 원자력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 전환으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비전을 계속해서 제시해왔다. 주요 일간지 리베라시옹(La Liberation)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2월 원자력 발전 설비 회사인 Framatome의 한 공장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미래 친환경 에너지는 원자력을 거쳐간다”고 언급했다. 또한 주요 일간지 르피가로(Le Figaro)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오해 7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제도 순방 중 “우리는 유럽 내에서 인구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은 국가이다. 우리에게는 오랜 역사의 원자력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고 밝히며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지난 3월 Novethic(프랑스 공공금융기관 Caisse des dépôts 산하 지속가능 경제를 위한 정보지)은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내외로 원자력 발전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 상세히 전했다. 이에 따르면, 프랑수아 베이루 고등판무관은 국내 원자력 발전을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한편,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의 탄소중립 지원 계획에 원자력 분야를 포함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의 확대발전 속도가 아직까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을 포기한다면 지금의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은 비단 프랑스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일간지 르몽드(Le Monde)에 따르면, 최근 몇 년 간 가속화된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유럽연합의 탄소중립 목표가 2050년까지 달성되기 어렵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탈탄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이용하던 모든 동력장치를 전기화해야 하는데, 이때 원자력 발전 없이는 그 수요를 충족하는 전기를 현실적으로 생산하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France 2030’에서 적극 개발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원자력 발전 시설은 소형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로, 1000 Mw 이상 규모의 기존 원자로보다 훨씬 적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지만(300Mw), 공장에서 이미 완성된 원자로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 옮겨 설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작 비용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국영전기회사 EDF가 2012년부터 준비해온 소형원자로 개발 프로젝트 ‘Nuward’를 2019년부터 공개해왔다. ‘France 2030’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더 적은 건설비용으로 더 안전하고 더 적은 양의 폐기물을 남기는 원자력 발전소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하는 이유로 친환경 모빌리티의 증가 및 수소 에너지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탈탄소 에너지 생산을 위해서 앞으로도 전기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며, 이러한 수요를 빠른 시일 내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원자력 발전밖에 없다고 보는 마크롱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Framatome 공장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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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Les Echos

 

친환경 그린 에너지 개발을 위한 노력

 

현 정부의 이러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먼저 원자력 발전 시설 개발의 경우, 보다 엄격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려왔다. 일례로 4세대 원자로 개발 프로젝트 Astrid를 2019년에 중단시킨 바 있다. 플루토늄과 우라늄 혼합물을 사용하여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원전의존도를 70%에서 50%로 낮추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에너지 개발 비전과 예상보다 적은 실제 우라늄 매장량 등을 이유로 2010년부터 이어져온 개발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프랑스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의 확대 생산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경제 전문 인터넷 신문 유진누벨(Usine Nouvelle)에 따르면 임기 초 2018년 발표했던 에너지 정책의 세 가지의 핵심은 탄소세 부과, 국영전기회사 EDF를 통한 원자력 발전 컨트롤, 그리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이었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2030년까지 지상 풍력 발전소 규모를 3배 늘리고, 태양광 에너지 생산량을 5배 늘리며 해상 풍력 발전소 건설을 약속했었다.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대체 에너지 개발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는 ITER(국제열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는 원자력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핵분열 방식의 핵융합 발전 기술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프로젝트이며, 현재 프랑스 남부 지역에 핵융합장치 토카막을 건설 중이다. 지난해 7월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나서서 토카막 조립 시작을 알린 바 있다. 유진누벨(Usine Nouvelle)에 따르면 이날 연설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수소를 이용한 핵융합 에너지야 말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며 탄탄소 클린 에너지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2050년에야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의 탄소중립 목표 도달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먼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 그린 에너지 개발을 위한 장기 비전을 향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시사점

 

프랑스는 당장 노후 원전 교체가 시급한 숙제로 남아있다. 1980년대에 대거 들어선 원전들이 2030년에 50년이 되는 상황에서 이들 대형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발전 시설은 현실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제 전문 소식지 노베틱(Novethic)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노후 원전 보수가 늦어지고 있는데 반해 풍력 발전소 건설은 현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들어 프랑스의 에너지 대책 수립이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엔지니어이 출신이자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LREM당 대변인 드종(Degeon) 씨는 원자력 에너지와 재생에너지 사이의 양자택일은 불가능하다며 “화석에너지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둘의 결합”이라며 마크롱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사회의 현실과 발전에 모두 적응하는 실용주의라고 밝혔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실용적인 노선을 택하는 것이 마크롱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라는 것이다. 에너지 컨설턴트 브르낙(Brenac) 씨는 파리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원자력 발전을 태양광 발전 또는 풍력 발전의 대척점으로 여길 수 없으며, 재생가능 에너지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보조 수단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마크롱 정부의 그린 에너지 정책의 방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국가전기공급망관리공사(Réseau de transport d’électricité)에서 10월 25일 발표한 프랑스 미래 에너지 시나리오를 보면, 2050년까지 100% 재생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적게는 13%, 많게는 5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실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고서는 목표하는 탈탄소 에너지 사회를 구축하기 어렵다고 계속해서 제기되는 주장과 같은 맥락의 연구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의 그린 에너지 정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친환경 에너지 정책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거세다. 먼저 이번 ‘France 2030’에서 언급한 소형원자로의 개발 현황에 비추어볼 때 2030년 전까지는 상용화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 역시 기존의 원자력 발전보다 저렴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 산업 감시 NGO 단체의 롬(Lhomme) 씨는 파리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소형원자로의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으며, 충분히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Greenpeace 측도 마크롱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원자력으로 만든 전기로 생산하는 수소에너지는 친환경 에너지 또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볼 수 없다”고 지적하며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청사진과는 달리 “수소 에너지는 중장기적으로 이동수단의 탈탄소화를 이루는 주요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친환경, 지속가능 경제, 그린에너지 등 탄소중립 사회 실현 이슈는 프랑스 및 유럽연합 국가 경제 전반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을 이루는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특히 우리처럼 내년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는 원자력 에너지를 비롯한 에너지 정책이 주요한 이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만큼 우리 기업 역시 각종 규제로 구체화될 프랑스 및 유럽연합의 정책 전반에 대해 꾸준한 정보 수집을 통한 민첩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자료: 한국 에너지정책연구원(KEEI), 국제열핵융합실험로 사이트(Iter.org), 일간지 La Libération, Le Figaro, Les Echos, Le Monde, Usine Nouvelle, 파리 KOTRA 무역관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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