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vs 독립, 미 자동차 기업의 배터리 부족 대응전략
- 전기차 배터리, 이르면 2022년부터 공급 부족 시작 -
- 미국 내 주요 완성차 기업, 배터리 공급 전략 선택의 기로 -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며 미국의 전기차 보급 정책은 그 어느때보다 공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하고, ▷2030년까지 미국 전기차 충전소 50만 개 추가 ▷2030년까지 모든 버스 생산을 무탄소 전기버스로 전환 ▷전기차 관련 세제 혜택 및 친환경 자동차 생산 기업 인센티브 제공 ▷차량 소유주가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바꿀 시 인센티브 제공 ▷정부 관계자들의 관용차 등 공공기관에서 사용되는 차량 300만대를 모두 전기차로 변경 등을 골자로 한 정책을 내세운 바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해 미국 내 50개 주 가운데 최초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며 온실가스를 35%까지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강력한 '전기차 드라이브'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의 원활한 공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있는 차량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에 이어, 배터리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공급 전망
시장조사기관 IHS Markit은 2021년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2020년 대비 70%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으며, 2025년에는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1220만대를 기록하며 연평균 5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전기차의 보급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과연 전기차 배터리의 공급이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고 있다. Statista에 따르면 2020년에서 2025년까지 전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필요한 배터리 용량은 약 6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2050년까지는 60배 더 많은 배터리 용량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 세계 배터리 수요 전망
(단위: 천 기가와트(GWh))
자료: Statista.com
그러나 미국의 경제 매체 AXOIS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리튬 배터리의 글로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자동차 업계의 배터리 부족을 예고하는 목소리는 2019년부터 지속되어왔다. 국내 시장조사업체 SNE Reserch는 이르면 2022년부터 전기차 배터리 생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배터리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으며,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올해 1월 투자자들에게 실적 발표를 하며 배터리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를 공식 언급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전기 세미 트럭에 들어가는 배터리 공급 부족 문제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머스크는 앞선 2020년 9월에도 파나소닉·LG·CATL 등 주요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가 최고 속도로 공급해도 2022년이 되면 배터리가 심각하게 부족해질 것이라는 트위터를 남긴 바 있다.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수요 & 공급 전망
(단위: 톤)
자료: Axois Visuals
미 자동차 기업, 배터리 공급 "동맹" vs "독립"
IHS Markit에 따르면 미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 115만대에서 2025년 220만대까지 약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1GWh 당 1.5만대의 전기차에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5년까지 미국은 약 146GWh의 배터리 생산능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향후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방안을 두고 미국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주요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배터리 공급 안정화를 위한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GM은 동맹을 통해 배터리 공급을 안정화 하고 있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사 '얼티엄셀즈'는 2019년부터 오하이오주에 미국 내 최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2021년 3월 추가로 미국 테네시주에 두 번째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오하이오 공장과 테네시 공장은 각각 최대 30GWh의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이 2012년 미시간주에 설립한 배터리 공장의 생산능력은 현재 5GWh로 GM, Ford, Stellantis 등에 이미 공급하고 있다. 순조롭게 이 두 공장이 완공되어 배터리 생산에 들어갈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미시간 공장까지 합쳐 전기차 총 97만대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는 65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가지게 되어 시장 선점을 확고하게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BMW도 3월 18일 CNBC 방송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기 보다는 삼성 등 주요 공급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배터리 공급을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하이오주의 GM-LG합작 얼티엄셀즈 공장 착공식 모습
자료: WKBN
한편, 배터리 자체 생산을 선택하며 "배터리 독립"을 선언하는 완성차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테슬라는 그간 CATL, Panasonic, LG 등 다양한 배터리 제조업체로부터 배터리를 공급 받아 왔으나, 2020년 9월 '배터리 데이'를 통해 반값 전기차 배터리팩을 자체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테슬라는 오는 2022년까지 연간 100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2030년까지는 이를 30배인 3TWh 규모의 생산 능력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폭스바겐도 2021년 3월 15일 '파워 데이' 행사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를 직접 만들겠다고 발표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폭스바겐은 이 행사에서 유럽에 6개 배터리 공장을 짓고 연 240GWh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을 밝혔다. 또한 각형의 통합형 셀(unified cell) 배터리를 개발해 2030년까지 폭스바겐 사 전기차 80%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일부 현지 언론에서는 최근의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문제로 인해, 첨단 소재인 반도체·배터리의 자체 생산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면서 완성차 기업들이 이러한 선택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행정명령을 통해 배터리를 비롯해 반도체, 의약품, 희토류를 공급망 재정비가 필요한 필수 품목으로 분류한 바 있으며, 이에 무역대표부측은 공급망 구축을 위해 기술 및 생산 교류, 상호 신뢰가 가능한 우호국들과 함께 향후 발생할 위기에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배터리의 종류
전기차 배터리
주: (왼쪽부터)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
자료: LG에너지솔루션, Samsung SDI, Tesla 각 사 웹사이트
공급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전기차 배터리가 업계 주류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준비도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종류는 크게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 3가지가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배터리 개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원가 절감 외에도 에너지 밀도(자동차의 전기구동 주행거리 주요 결정 요인)를 증대시키는 것이며, 설치 공간과 무게도 줄이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다양한 형태의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형태의 배터리가 차세대에 보편적으로 사용될지도 업계의 주요한 관심사이다.
(파우치형)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주로 제작하는 배터리이다. 크기는 중대형이지만 부피가 작은 편이라 여러 형태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GM, Ford, 볼보, 닛산, 현대·기아 등의 제조사 차량에 주로 사용된다.
(각형) BMW, 벤츠, 포르쉐 등의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로 최근 폭스바겐도 2030년까지 규격화된 각형 배터리 비중 확대와 자체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외부 충격과 발열에 강한 중대형 배터리로 알루미늄 금속 외관으로 이루어졌으며 에너지밀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CATL과 BYD 같은 큰 중국 업체들이 주로 각형 배터리를 주력 생산하고 있으며, 삼성SDI와 토시바도 생산한다.
(원통형) 주로 테슬라에 들어가는 배터리로 기계적 안정성이 뛰어나 배터리팩 구성이 용이하며 생산가격이 낮은 편이다. 대량 생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이나 파우치형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테슬라와 협력 관계인 파나소닉을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이 제조하고 있다.
시사점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한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공급 부족 현상은 세계 배터리 1,2위를 다투는 배터리 강국인 한국 기업에 호재가 될 수 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반면, 미국 내에서 자체 생산 필요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도 주시해야 한다. 짐 팔리 Ford CEO는 최근 열린 한 리서치 컨퍼런스에서 차량 반도체 부족 사태로 야기된 공장 셧다운 피해와 주요 부품의 자체적인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배터리 자체 생산에 대해 정부와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동차관련 리서치기관 Autoforecast의 조 맥케이브 대표는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OEM들이 배터리 생산을 인소싱하려고 공장을 짓고 준비하더라도 시간이 수년은 걸릴 것이며, 상황이 그렇게 되면 OEM들은 GM처럼 배터리기술을 가진 회사와 합작으로 공장을 설립을 통해 투자 부담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찾아 나설 것" 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배터리 분야 세계 1위를 확고히 하려면 꾸준한 상생과 동맹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배터리 부족 현상에 대한 예고는 그만큼 전기차 보급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향후 5년간은 미국 완성차 기업이 공격적인 전기차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신 행정부의 정책도 이를 뒷받침하며 힘을 싣어줄 전망이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들도 소재 경량화 등 전기차 대응 전략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할 때다.
자료: BloombergNEF, IHS Markit, GM Authority, joebien.com, Statista, Axois Visuals, WKBN,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