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국과 경제동반자협정(EPA) 체결 이후 동향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주요국과 맺은 첫 무역협정 –
- EU산 부품을 자국산으로 취급하는 원산지규정 도입 등으로 양국기업의 비즈니스 연속성 유지 도모 -
- 일본과 영국과의 협정만으로는 영향 제한적, 향후 영국과 EU와의 미래관계 협상 추진 동향에 촉각 -
일본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대신과 영국 엘리자베스 트러스 국제통상부 장관이 10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경제동반자협정(EPA·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에 서명했다. 새 무역협정은 양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 내년 1월 1일 발효될 전망이다. 이번 협정은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 이후 주요국과 독자적으로 무역협정을 체결한 첫 사례로, ‘브렉시트’ 이행기간 만료 전 체결돼 양국기업들이 비즈니스 연속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도요타, 닛산 등 영국에 생산거점을 둔 일본 기업들은 일본과 영국 간 무역협정만으로는 그 영향이 제한적이며, 영국과 EU 간 미래관계 협상이 연내 마무리돼야 ‘브렉시트’에 따른 추가관세 부담 등을 피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영국 EPA 서명식
자료: 일본 외무성
일본-영국 EPA 추진경과 및 의미
영국은 EU의 회원국으로, 일본-영국 간 교역 시 2019년 2월 발효된 일본과 EU와의 무역협정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영국의 EU 탈퇴 이행기간이 끝나는 올해 말 이후로는 EU와의 무역협정이 적용되지 않게 된다. 일본과 영국은 지난 6월 새로운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을 개시, 협상개시 4개월 반 만인 지난 10월 23일 공식 서명에 이르렀다.
모테기 외무대신은 기자회견을 통해 “연내 영국과의 무역협정을 체결해 EU와의 무역협정에서 일본이 향유하고 있는 이익을 지속시키고 일본 기업의 비즈니스 연속성을 보장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정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주요국과 맺은 첫 무역협정이다.
일본-영국 EPA 추진경과
l 2019년 2월: 일본-EU EPA 발효 l 2020년 1월: 영국의 EU 탈퇴 결정 l 2020년 6월: 일본-영국 EPA 협상 개시 l 2020년 10월: 일본-영국 EPA 공식 서명 |
자료: 일본 외무성
영국이 일본과의 무역협정 체결을 발판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TPP11) 가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영국 트러스 국제통상부 장관은 닛케이신문과의 9월 13일 인터뷰를 통해 “이번 합의를 통해 영국이 세계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영국의 CPTPP 가입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트러스 장관은 10월 23일 무역협정 체결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영국의 CPTPP 가입신청 시기에 대해 “내년 초”라고 언급하며, “일본을 포함한 회원국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영국 EPA의 주요 내용
이번 협정은 대체로 2019년 2월 발효된 일본과 EU와의 무역협정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상품교역에 있어서는 EU와의 무역협정에서 협의된 것과 같은 관세 인하율을 적용하고 관세철폐 기간도 맞추는 ‘캐치업’ 규정을 적용한다. 일본산 승용차에 적용되는 관세율을 단계적으로 인하해 2026년에는 제로(Zero)로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번 협정으로 영국의 대일 수출품 94%, 일본의 대영수출품 99%의 관세가 철폐될 전망이다.
한편 철도차량 및 부품,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전기제어판 등의 경우 EU와의 협정에서는 관세철폐까지 6~1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영국과의 이번 협정을 통해 즉시 철폐에 합의했다.
원산지규정에 있어서는 EU산 부품을 자국산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한다. 제3국에 해당하는 EU산 부품으로 만든 완성품에 대해 일본과 영국이 서로 특혜관세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전자상거래 및 금융서비스에 있어서는 컴퓨터 관련 장비의 암호화정보 공개 요구를 금지하고 소스코드 공개요청 금지 대상에 알고리즘을 추가하는 데 합의했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의 다나카 이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산케이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EU와의 무역협정 이상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영국 진출 일본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연내 타결하는 것을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영국 EPA의 주요 합의내용
분류 |
내용 |
|
공업품 |
자동차 |
일본 자동차 관세 2026년 철폐 |
그 외 부품 |
철도차량·부품 등의 관세를 즉시 철폐 |
|
원산지규정 |
EU산 부품을 자국산으로 간주 |
|
농산품 |
전반 |
새로운 수입물량을 설정하지 않음. |
영국산 블루치즈 |
EU로부터의 수입이 적은 경우, 저관세 용인 |
|
디지털 |
암호화정보 공개요구 금지, 소스코드 공개요청 금지 대상으로 알고리즘 추가 등 |
자료: 닛케이신문
일본 기업 반응(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일본에 영국은 독일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수출상대국이다. 약 1000여 개사의 일본 기업이 영국에 진출해 비즈니스를 전개해 약 18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상위 10개국
(단위: 조 엔, %)
연번 |
국가명 |
수출액 |
구성비 |
1 |
미국 |
15.3 |
19.8 |
2 |
중국 |
14.7 |
19.1 |
3 |
EU |
9.0 |
11.6 |
4 |
한국 |
5.0 |
6.6 |
5 |
대만 |
4.7 |
6.1 |
6 |
홍콩 |
3.7 |
4.8 |
7 |
태국 |
3.3 |
4.3 |
8 |
싱가포르 |
2.2 |
2.7 |
9 |
베트남 |
1.8 |
2.3 |
10 |
호주 |
1.6 |
2.1 |
수출총액 |
76.9 |
100 |
자료: 일본 외무성
2019년 일본의 EU 내 수출상위 5개국 (단위: 조 엔, %)
연번 |
국가명 |
수출액 |
구성비 |
1 |
독일 |
2.2 |
2.9 |
2 |
영국 |
1.5 |
2.0 |
3 |
네덜란드 |
1.3 |
1.7 |
4 |
벨기에 |
0.8 |
1.1 |
5 |
프랑스 |
0.7 |
1.0 |
자료: 일본 외무성
영국은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의 주요 완성차 메이커들의 생산거점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2019년 영국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약 130만 대로, 일본계 기업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2017~2019년 영국 진출 일본 자동차기업 생산대수 현황
(단위: 대)
브랜드명 |
생산대수 |
||
2017 |
2018 |
2019 |
|
도요타 |
167,758 |
129,070 |
134,422 |
닛산 |
457,016 |
442,254 |
371,304 |
혼다 |
166,228 |
160,676 |
75,488 |
영국 전체 |
1,711,825 |
1,518,675 |
1,303,135 |
자료: MARKLINES
일본 기업들은 이번 협정 체결을 환영하면서도, 일본과 영국 사이의 협정만으로는 내년 이후의 대(對) 유럽 비즈니스 영향을 예측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영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영국을 EU 회원국으로 상정해 영국과 유럽대륙을 넘나드는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대륙에서 부품을 수입해 영국에서 조립·가공하고 완제품을 다시 유럽대륙에 수출하는 형태다. 도요타자동차의 현지조달 비율은 약 50%에 불과하다. 일본이나 폴란드로부터 엔진부품과 변속기를 수입하고 있다. 영국에서 생산된 자동차의 약 44%는 EU로 수출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영국과 EU 사이의 미래관계 협상 동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과 EU 사이의 미래관계 협상이 연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영국에서 EU에 수출하는 승용차에 새롭게 10%의 관세가 부과된다. 영국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일본 메이커를 포함해 영국 자동차업계가 부담하게 될 추가 관세비용은 연간 45억 파운드(약 6000억 엔)에 달한다. 관세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유럽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기업이 부담할 경우에도 10%의 관세율이 대부분 완성차 메이커의 마진율보다도 높은 수치인 탓에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닛케이신문의 10월 5일 보도에 따르면 도요타와 닛산은 영국 정부에 EU와의 협상 결렬 시 발생하게 될 관세비용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영국 정부에 EU와의 협상 타결을 압박하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의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취지다. 표면적으로는 관세비용 보상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을 감안해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감세조치 등 전반적인 제조업 지원정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영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서는 향후 일본기업들이 대(對) 유럽 비즈니스 전면 재검토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혼다는 이미 2019년 2월에 영국 스윈던에 위치한 영국 공장을 전면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시빅' 등 주력모델의 생산을 일본 국내공장 등 타 생산거점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도요타 유럽법인의 요한 반 질(Johan van Zyl) 집행임원도 2019년 3월 닛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이 실현될 경우 영국 공장 철수도 선택지 중 하나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닛산 역시 차기 SUV 'X-TRAIL'의 생산지를 영국에서 일본으로 변경하고 고급차 '인피니티' 생산을 종료하는 등 불확실한 상황 속 글로벌 생산계획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 진출 일본 완성차 메이커 주요 동향
기업명 |
공장 위치 |
주요 동향 |
닛산 |
선더랜드 |
· 차기 SUV 'X-TRAIL' 생산을 영국에서 일본으로 이관 · 고급차 '인피니티' 생산을 2019년 내에 종료 |
도요타 |
바나스톤 |
· '노딜 브렉시트' 실현 시 철수 검토 |
혼다 |
스윈든 |
· 영국 공장 폐쇄 및 철수 예정 |
자료: 닛케이신문(2019.12.15.)
혼다 영국 공장 철수결정 이후 일본계 부품업체 주요 동향
기업명 |
생산품목 |
주요 동향 |
케이힌 |
전자부품 |
2021년 영국 자회사 해산 계획 |
유니프레스 |
차체골격부품 |
2021년 영국 남부 공장 폐쇄 |
카사이공업 |
내장부품 |
영국 남부 공장 폐쇄 검토중 |
티에스테크 |
시트 |
영국공장 폐쇄를 포함하여 검토 예정 |
자료: 닛케이신문(2019.12.15.)
시사점
일본-영국 EPA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영국이 주요국과 독자적으로 맺은 최초의 무역협정이다. 대체로 일본-EU EPA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나 EU산 부품을 자국산으로 취급하는 원산지규정을 도입해 EU산 부품으로 만든 완성품에 대해 일본과 영국이 서로 특혜관세를 인정할 수 있게 하는 등 '브렉시트' 이행기간이 만료되는 올해 연말 이후에도 양국 기업의 비즈니스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영국과 일본과의 협정만으로는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영국과 유럽대륙을 넘나드는 형태의 공급 및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 닛산 등 영국에 생산거점을 둔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영국과의 무역협정 타결을 환영하면서도 영국과 EU 사이의 미래관계 협상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향후 정세에 따라서는 일본기업의 대(對) 유럽 비즈니스에 추가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우리 기업의 관심을 요한다.
자료: 일본 외무성, JETRO, MARKLINES, 현지언론 및 KOTRA 도쿄 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