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표백하다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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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9 18:00
방앗간에서 고추를 빻으며 눈물을 주체 못했다. 유독 매운 고추 맛 탓이런가. 잦은 재채기와 함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하지만 내 눈물의 근원은 다른데 있다. 지금 방앗간 기계 속에 담긴 고운 빛깔의 고추는 시댁 육촌 동서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방앗간 기계의 굉음과 함께 곱게 갈리고 있는 고춧가루를 바라보자 더욱 슬픔이 북받친다.아픈 몸을 추스르며 밭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땄을 생전의 동서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어디 이뿐이랴. 햇볕에 고추를 애써 말린 후 그것의 꼭지를 따고 고추 하나하나를 행주로 닦았을 육촌 동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