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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편지 1127호 |
녹지 않는 눈이 내리면 |
어느 여름, 녹지 않는 눈이 내리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묻거나 태우지 않으면 계속 쌓이기만 하는 ‘방부제 눈’이 내리는 세상, 『스노볼 드라이브』
는 한 시절을 이 눈 아래 박제 당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다 망해버리면 좋겠다’는 체념 섞인
중얼거림, 바람 아닌 바람이 마침내 이루어진 듯한 현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갈까요. 닿으면 촉촉하게 녹는 대신 날카롭게
공격하는 눈, 동의 없이 찾아와 곳곳에 존재하며 고통을 남기는 불화의 존재들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할까요. 불확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책이 안기는 이런 물음들이 결코 멀거나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재난은 일상을 파괴하지만 그 아래서 함께
무너지기보다는 웃고, 온기를 피워내고, 헤치고 달리기를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이 무엇보다 빛나는 소설입니다.
-박형욱 (소설 M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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