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악인의 얼굴 : 그에게 필요 이상의 얼굴을 부여하지 말라

목포MBC_뉴스투데이_ 리포트

목포MBC 뉴스투데이?리포트 '조주빈'은 예전부터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中 ⓒ목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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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악을 상대하기 위해 발버둥 친 기록의 연속이다. 우리는 나와 내 공동체를 해하러 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천둥 번개와 지진 따위에 갖가지 상징과 신화적 세계관을 결부시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든 이유 또한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재앙의 연유를 ‘이해’해야 그것을 피하거나 하다못해 납득할 수 있으니까. 자연재해를 대하는 태도도 그런데 하물며 상대가 인간일 때는 어땠을까. 멀게는 구약에 기록된 카인과 아벨의 서사부터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왕 서사, 가까이는 강력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크리미널 마인드>나 <마인드헌터> 등의 드라마 시리즈까지, 인류는 악을 이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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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노력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악을 만났을 때, 인류는 상대를 ‘악마’, ‘마녀’, ‘야차’, ‘귀신 들린 자’, ‘짐승’ 등으로 호명했다. 인간의 힘으로 다른 인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류 문명의 전제조건인 선의와 상호 신뢰가 산산조각 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처럼 언제든 끔찍한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사회를 지탱한단 말인가? 그러니 저 자는 인간이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라면 저럴 수 없으니 응당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여야 한다. 인류가 악을 대하는 역사는 이처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악인을 아예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추방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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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원은 악을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마음의 발로였겠지만, 결국 두 가지 모두 결정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악의 기원을 이해하려 그에 서사를 부여해 온 방식은, 엉뚱하게도 그 서사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악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또한 악인 스스로 그와 같은 서사들을 역이용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고자 하기도 했다. 2012년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상영하던 미국 콜로라도주 극장에 침입해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자신을 ‘조커’라고 칭했던 사건을 생각해보라. 한편 악인을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추방하는 방식에는 악인에게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식의 악명을 선사하는 동시에, 그 악행이 가능하도록 만든 사회적 토양을 무시하고 나머지 모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함정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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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한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의 피의자인 조주빈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 또한 크게 그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쪽에서는 그의 평상시 언행이나 성격, 학교 성적 따위를 캐내어 기사화하며 ‘겉으로는 이리도 멀쩡하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두 얼굴의 악마가 되었나’ 따위의 이야기를 만든다. 다른 한 쪽에서는 그의 성장과정을 분석하며 어린 시절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폭압적인 양육 분위기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식의 프로파일링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당사자도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랬으니 취재진들 앞에서 “악마의 삶을 멈춰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운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저지른 악행이 자력으로는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인류가 악을 상대해 온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자극하는 말을 던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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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테러 사건에 관해 말하며 자신은 테러범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악명’조차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두 사건의 양상은 분명 다르고, 신상공개를 외친 수많은 한국 시민들의 요구에는 나름의 맥락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피의자들의 신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악인이 그 죄값을 제대로 치룰 때까지 사회에서 격리하고자 함이 이유이지, 그들에게 어떠한 서사를 부여해 그들을 동정하거나 혹은 그들을 ‘악마’로 칭함으로써 이와 같은 끔찍한 집단범죄를 낳은 한국사회의 토양을 부정하려는 목적이어선 안 된다. 악인에게 필요 이상의 얼굴을 부여하지 말라. 우리는 그에게 악명조차 허락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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