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아무래도 내 그릇은 작지만

간밤의 TV 시청으로 눈물을 쏟았더니 눈이 무거워졌다. ‘유퀴즈 온 더 블럭’을 본 탓이다. 눈물이 많은 타입이라 휴머니즘 가득한 프로그램을 볼 때면 금방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번 편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코로나19)에서 가장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구가 고향인 나는 가족들과 몇 주째 전화로만 안부를 물어보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이 혼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아, 사실은 이렇게 걱정만 하고 있었다.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단 건 사실이다. 이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바란다는 별 의미 없는 기도만 하고 있다. 그런 내게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찡한 물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간호사와 의사들, 코로나맵을 만든 사람, 다녀간 사람이 없지만 연신 소독을 하고 있는 가게 사장님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 상황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열심인 분들의 모습을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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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꿈은 대개 누군가에게 어떤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기자가 되어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며 정의를 이루겠노라 꿈꾸던 어린이였다. 그런 대의를 품는 게 내겐 벅찬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건 그 꿈을 품은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때였다. 그 때부터 점차 나만을 생각하면 되는 1인분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운동과 쉼과 독서. 내 인생에는 오로지 나만 존재한다. 이것만 해도 내겐 벅차다.


나만 존재하는 삶에 갑작스레 ‘이대로도 괜찮을까?’하는 질문이 던져지니 당황스럽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인가,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관종의 기운인가, 나의 쓸모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탓인가. 본인은 아무래도 괜찮다며 당장 대구의 병원으로 달려간 의료진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들의 사명감이 무척이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 갑작스런 고민을 하게 된 건 타인과의 비교에 의한 자아 성찰이다. 내겐 없는 세상에 대한 책임감과 직업 의식이 부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대단한 사람들이 실로 많다. 자신의 일을 할 뿐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 본인보다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더 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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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는 오늘도 일기에 써.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한 명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데 언니, 나는 또 다른 걸 알고 있어. 한 명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그 가능성마저 져 버리기엔, 나는 그럼에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경찰관이라는 걸. 나의 이야기가, 지금도 무수한 현장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경찰관의 외침이, 마냥 흩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듯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겠지만, 결국 어딘가에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이 이야기를 더욱 퍼뜨릴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고.


-원도, 『경찰관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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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로 세상이 바뀔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텀블러를 챙겨 나갈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이런다고 나아질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곧 남아 있는 양심을 확인하고는 의문을 접는다. 나아질 걸 바라는 게 아니라 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여기서도 결국엔 나를 생각한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삶의 경계는 여전히 나에게 한정되어있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 하나를 잘 보살피는 것도 어려운 세상인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다만 긍정적인 기운이 희미해진 지금, 그래도 우리의 삶을 윤활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이 퍽 들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버려버릴 수도 있는 마음들을 나는 괜찮습니다, 라며 기꺼이 행하는 마음들의 소중함.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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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하지 못한 책임감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적어도 그 생명들은 보전되지 않을까 하고 또 생각한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면, 나의 쓸모를 스스로가 발견하고 아낄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잘 헤쳐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도. 희망이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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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떡볶이집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나는 좋다. 대체로 모든 게 그렇다. 뭐가 되었든 그닥 훌륭하지 않더라도 어쩌다 존재하게 되었으면 가능한 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사십 년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안심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거나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고 여겨서가 아니라 어쨌거나 백기녀와 신중택의 젊은 날 뜨거운 밤을 통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가 존재하게 되어버렸으니 기왕 어렵게 된 거 오래오래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요조, 『아무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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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속으로원도 저 | 이후진프레스
경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줄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이자, 경찰관으로서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결코 지나칠 수 없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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