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50대가 되면 죽어버려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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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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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이게 뭐냐고 물었다. 이모가 보낸 문자였다. ‘애 보는 일 구하려면 여기서 찾아봐라. 단디헬퍼.’ 나도 처음 보는 단어라 검색해봤더니, 등하굣길에 보호자 대신 아이를 픽업하는 단순한 일부터 보호자가 일하는 동안 애를 보는 긴 시간의 일까지, 다양한 종류의 베이비시터 일자리를 모아둔 사이트였다. 엄마는 방금 전까지 이모에게 전화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일이 구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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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자주 지금 당장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 〈벌새〉의 은희처럼. 중학생 때에는 서른이 되면 절로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다섯 살에게 서른은 이미 너무 많이 산 느낌이었다. (지금은 서른도 너무 어리다 싶지만.) 그리고 20대가 되어서는 50대가 되면 절로 죽어버렸으면, 생각했다. 50대를 기점으로 찍은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어른, 부모님이 50대 중후반이 되면서 일자리가 매우 좁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난에 가까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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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일을 그만두면서, 엄마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퇴직금이 없었고, 나와 언니 월급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차 등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은 액수의 정기적인 수입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저 엄마 용돈 벌이 정도만이라도 되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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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졸업해서는 의류 브랜드 회사에 다니다가, 아빠를 만나 미술학원을 차렸다. 동네 작은 학원으로 출발했던 학원은 점점 원생 수가 늘어나 선생님 몇 명을 더 고용한, 꽤 큰 학원으로 커졌다. 그때 엄마는 나를 가졌다. 그리고 학원 일을 접었다. 내가 어느 정도 큰 후에는 미술 심리치료를 공부했다. 한편으로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꾸준히 명상을 해왔다. 그런 엄마가 처음 구한 일은 알코올중독자 치료기관에서 명상과 미술치료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중독자와 중독자 가족을 만나면서 엄마 스스로도 치유 받고 자기효능감도 조금씩 회복했지만, 강의료는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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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도 몇 번 거쳐보았지만 50대 중년 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돌봄 노동이었다. 전공이나 수료증은 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자식의 도움 없이는 ‘단디헬퍼’ 사이트 계정을 만들지 못하고, 아파트 게시판에 붙일 전단지조차 세련되게 만들지 못하는 엄마에게 돌봄 노동 자리를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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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기본적으로 계급적 개념이자 범주이다. 지식인, 여성 지식인, 게이 지식인이란 말은 있지만 노인 지식이란 말은 없다. 지식인이나 정치인, 재벌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인이라고 불리지 않으며 그들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민에게만 노인이란 칭호를 붙인다. 노인이 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이것은 나이 듦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중략) 연령주의 사회일수록 나이 듦과 늙음은 동의어로 간주된다. 그러나 나이 듦과 늙음의 상관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남성에게는 나이 듦이 곧 늙음을 의미하지 않지만, 여성에 나이 듦과 늙음은 같은 말이다. 대개 중산층 이상의 남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권력과 자원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지만 여성은 그 반대다.
_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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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최근에는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내가 나름 ‘이대 나온 여자’인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대니?” 나는 전단지를 본 학부모로부터 곧 연락이 올 거라고 위로했지만, 보다 낙관적인 말은 하지 못했다. 엄마가 만든 전단지에는 커다란 궁서체로 쓰인 ‘아이 봅니다’ 옆에 웃음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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