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네가 가장 예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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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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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우리 집 세 자매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어서 나는 질투 없이 동생을 예뻐하기만 하며 자랐다.


동생과 나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함께 다니면 거의 친구로 안다. 한 번은 내가 다니는 병원에 동생과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동생이라고 하자 간호사 선생님이 당황하며 “와, 체구가 되게 닮으셨네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얼마나 닮은 부분이 없으면 체구가 닮았다니…….


이렇게 우리는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내향적인 건 비슷하지만 뿜어내는 에너지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나는 속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분출하는 성격이라면 동생은 차곡차곡 쌓아 마음 깊숙이 구겨 넣는 사람이다. 나는 말이 많은데 동생은 말이 없는 편이고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별로 없다. 동생은 ‘아마 왕따였는데 내가 몰랐던 거일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그만큼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SNS를 단 한 번도(심지어 지금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난 어릴 때 거의 모든 친구의 휴대폰에 내 사진이 있는 흑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동생은 사진도 거의 없다. 장난식으로 동생에게 맨날 너 같은 애가 연예인을 해야 했다고, 파도 파도 절대로 나오지 않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동생과 내가 단둘이서만 붙어있던 시간은 두 번이다. 내가 여섯 살이고 동생은 한 살, 그리고 내가 스물아홉 동생은 스물네 살이었던 작년.


내가 여섯 살 때 언니는 학교 오후수업을 시작했고 엄마는 보험회사에 나갔으며 아빠는 출장이 잦았다. 엄마는 한 살이었던 동생을 놀이방에 맡기고 회사를 가야 했는데 안심하고 동생을 맡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유치원을 마치고 놀이방에 가서 동생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다. 그때의 엄마 마음을 지금은 알 수 있지만, 그 시절 나는 내가 다 큰 줄로만 알았다.


유치원이 끝나고 급히 놀이방에 가면 동생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이 울곤 했다. 황급히 안아 들면 울음을 그쳤고 그때 내가 어떤 대처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미지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순간부터 언니든 엄마든 아빠가 오기까지 우리는 둘만 함께 있었다. 같이 거울을 보고 까꿍하며 놀던 기억은 어렴풋한데 사실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고 여섯 살짜리 꼬마랑 한 살짜리 아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은 피부가 아주 하얗고 잘 울었다. 찹쌀떡같이 귀여워서 언니랑 내가 서로 안겠다고 난리를 칠 정도였다. 그렇게 예뻐했던 시절은 참 좋았지만, 동생이 커가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많이 자라버렸다. 동생이 겨우 다섯 살 때 나는 이미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언니 역시 중학생이었으니까.


동생의 유년기는 거의 엄마와 함께였다. 우리는 사춘기를 겪으며 동생 따위는 내팽개치고 서로 친구들과 놀기 바빴고 어린 동생이 장난으로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말을 하면 서로 놀리고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고는 했다. 동생은 그 시절 엄마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엄마는 그때 마음이 아픈 상태였고 우리처럼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니까. 늦는 날이 잦았고 동생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동생은 애어른이 되었다. 말수가 적어졌고 가족이나 집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조차 하지 않는, 그리고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가 기뻐할 거 같은 많은 일을 했다. 엄마가 술에 취해 기억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동생은 여과 없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아무도 없는 하굣길, 아빠가 돌아오는 주말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그네를 탔다고 했다. 이 이야기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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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중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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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동생은 풋풋하고 반짝거리던 유년기와 십 대를 쓸쓸하게 보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읽을 때면 동생의 모습이 자주 떠오른다. 마음이 무디고 손발은 밤색으로 빛나던, 외로움, 고독, 공허 같은 밤색의 단어를 작은 손에 가득 쥔 채로 말이다.


동생은 이제 세상에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끈이 너무 얇고 쉽게 바스러질 거 같았다. SNS도,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 동생이 사라지면 난 연락해볼 친구조차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생이 갑자기 사라져버릴까 봐 두려웠다.


독립해서 따로 살던 동생은 스물네 살의 연말 내게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우리는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에게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부서졌다고 말했다. 나는 부서진 게 아니라 구겨진 거라고,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보기 좋게 펼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스물다섯 살을 앞둔 동생과 둘이 함께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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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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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블란서의 루오 할아버지 같이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중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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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나만을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건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동생은 아주 예쁜 시기를 불행하고 쓸쓸하게 보냈고 지금 역시 그렇다. 그게 나와는 다른 결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동생의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뱉어내야 했을 묵은 글자가 잔뜩 있고, 그 글자가 너무 많아 마음과 목을 찔러서 자꾸 삼켜내기만 한다는 걸 느낀다.


동생은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고, 가족은 내가 동생을 보호하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동생이 스물네 살에 내게 연락해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나름대로 힘껏 옷자락을 붙들고 있다.


동생은 내가 약을 먹고 응급실에 간 이후부터 알약을 먹지 못한다. 자꾸 그 순간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될 수록이면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는 루오 할아버지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마음속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글자가 가득해질 수도 있으니까. 희망은 사랑하는 이가 있을 때 생긴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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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이바라기 노리코 저/윤수현 역 | 스타북스
이바라기 노리코 시 속의 기댐은 비굴한 야합 수준의 기댐을 말한다. 시인은 사상이나 종교나 학문, 그리고 권위에 기대는 것은 야합이라고 한다. 결국 이 시는 기대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떳떳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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