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김시덕 “역사를 알아야 현대 일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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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로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500년 사를 관통하며 오늘날 한반도의 복잡다단한 국제정세를 새롭게 읽어낼 단초를 제시했던 김시덕 저자. 그가 이번에는 전국시대부터 패전에 이르는 일본의 4세기 역사를 5권의 책으로 갈무리한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기획한 『일본인 이야기』 의 첫 번째 책은 전쟁과 변수가 넘쳐나는 격동의 16세기 일본사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독자들은 역사를 움직이는 우연의 힘, 그리고 그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는 개인의 결단이 역동적이고 장대한 드라마로 펼쳐지는 가운데 일본을 조선, 중국과 다른 길을 걷게 만든 결정적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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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총 5권으로 출간될 예정인 『일본인 이야기』 시리즈를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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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가 40대로 들어서던 2014~2015년에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를 주간지에 연재하고 책으로 출판하면서, 한반도와 그 바깥 세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연구에 대한 청사진을 글로 남겼습니다. 그 후로 5년이 지나 40대 후반기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 일본 열도와 그 바깥 세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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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에서 일본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공격의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원하는 정답이 아닌 다른 팩트를 소개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면 비난의 표적이 되고는 하지요. “빨갱이”라는 말 이상으로 공격성이 강한 “친일파”나 “토착 왜구”라는 단어를 정치권과 국수주의 진영에서 너무나도 쉽게 쓰다 보니, 일본을 다루는 사람들은 몸을 사리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수세적인 태도를 내재화하면서 일본을 연구한 것이 올해로 25년째입니다. 저의 생각에 대해 한국 내의 일부 사람들이 근거 없이 비난하고 인신공격할지라도, 제가 일본에 대해 생각하고 한일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많은 시민들께 숨김없이 말하자는 각오를 비로소 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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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이야기 1』는 파란만장한 전국시대가 펼쳐진 16세기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리즈를 근세부터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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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유럽인이 도착하는 1550년대부터 일본이 중화 문명 일변도의 세계관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존경할만한 외부 존재가 하나일 때와 두 개일 때와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좋든 싫든 중화 문명만을 신경 쓸만한 유일한 외부의 존재로서 인식하던 때의 일본과, 중화 문명과는 전적으로 다르고 중화 문명보다 나은 점이 있어 보이기도 하는 유럽 문명이라는 존재를 새로이 알게 된 뒤의 일본은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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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년대 이후로 100년 사이에 수십만 명의 가톨릭교도를 처형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유럽 세력과 경쟁하던 체제를 이른바 쇄국 체제로 바꾼 뒤에도, 중화 문명 이외에 유럽 문명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 바다 너머 존재한다는 인식은 일본의 지배층 사이에서 공유됩니다. 그러한 인식이 있기에 외부 세력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했고, 이러한 유연한 태도 덕분에 일본은 에도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큰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시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내전과 분단을 겪은 한반도와는 이 점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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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전쟁과 바다’인데 이 책에서 전쟁과 바다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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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는 전쟁을 통해 자국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립니다. 중세 유럽은 수많은 나라로 쪼개져서 무한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1550년대 이후 일본도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유럽의 무한 전쟁에 휘말려 듭니다. 유럽과 일본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보니, 다행히도 일본은 유럽 국가와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할 수 있었고, 불행히도 전쟁을 통해 국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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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는 전쟁을 무조건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을 터부시하지만,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전쟁을 통해 형성되고 변합니다. 전쟁은 피하고 잊어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막을 수 있습니다.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중반에 이르는 백 년 동안의 일본은 전쟁과 바다를 통해 그 이전까지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성격의 국가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반도 남부의 주민들이 1950~53년의 격심한 내전을 거치면서 현대 한국이라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닌 국가를 만들어낸 것도 이와 비슷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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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00년대의 도쿠가와 일본은 유럽 국가들과의 무한 경쟁을 피하고 바다를 성벽 삼아서 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이때 유럽 국가들과의 전쟁을 포기하고 바다에 기댄 대가를 일본은 1806~1808년에 받게 됩니다. 러시아?영국의 군사적 도전에 잇따라 패한 것이지요.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길은 이때 시작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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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 세계를 통틀어 종래에 나온 일본사 책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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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은 객관적인 사실 이상으로 주관적인 믿음에 자극되어 행동하며, 누군가 주관적인 정념에 따라 노력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우연에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인간이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감정적인 존재이고, 세상은 우연적이라는 관점에서 1550년대 이후 일본인들의 행동과 일본이라는 나라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 즉 기술의 진보에 따라 어떤 지역의 지정학적 조건은 언제나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열도를 둘러싸고 그렇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피는 데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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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바뀌며 영원한 것은 없으며 당신은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처럼, 굳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하면 어떠한 지역의 정치, 경제적 조건은 언제나 바뀌며 그에 따라 그 지역의 주민도 질적으로 변한다는 사실 뿐입니다. 저는 이처럼 영원히 그 조건을 바꾸는 시기의 지역의 전형적인 사례가 155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의 일본이라고 생각해서 『일본인 이야기』 전 5권 시리즈에서 이 400년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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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 일본 최초의 가톨릭 교회인 난반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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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톨릭이 퍼진 경위도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전국시대 일본에 가톨릭이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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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오다 노부나가로 하여금 중국이 이 세계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을뿐더러 이 세계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중화적 질서가 유일한 세계관이었던 시대에서 여러 세계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시대로의 변화는, 오다 노부나가로 대표되는 일본인 개개인의 정신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충격파가 너무나도 심대했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을 유럽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는 정책을 취함으로써 기존의 지배 질서를 지키는 방법을 택하고 지난 100년간의 가톨릭 열풍을 역사에서 통째로 지워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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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후로도 일본 지배층은 네덜란드로 대표되는 유럽이 전해주는 정보와 지식을 중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는데, 이는 일본 열도를 둘러싼 바다 바깥에 중국보다 더 강대한 유럽이라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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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중국, 한국과 다른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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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을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13세기에 몽골의 공격을 버텨냈는가 무너졌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몽골이 동북아시아 정복 전쟁을 시작할 당시, 고려와 가마쿠라 일본 모두 불교국가였고 정치적 중심인 국왕 또는 덴노(天皇)와 군사적 중심인 무사 집단이 공존하는 구조였습니다. 몽골에 정복당한 고려에서는 정치와 군사의 이원적 구조가 무너진 반면에, 몽골에 정복당하지 않은 가마쿠라 일본에서는 정치와 군사의 이원적 구조가 살아남았습니다. 또한 몽골 제국의 일부로서의 고려에는 성리학이 빠른 시기에 전해진 반면에, 일본에서는 성리학이 소개된 시기와 퍼져나간 속도가 늦었습니다. 이때부터 발생한 한반도와 일본열도 두 지역의 차이가 그 후로 점점 더 커져가면서 두 지역은 별개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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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漢人) 지역과 비한인(非漢人) 지역을 포괄하는 오늘날의 중국 지역은 유럽과 접촉한 시기가 일본에 비해 더 빨랐습니다. 중국에서는 마르코 폴로와 아담 샬로 대표되는 유럽인들이 수백 년에 걸쳐 꾸준히 중앙에서 활동했고 러시아와는 국가 대 국가로서 네르친스크?캬흐타 조약까지 정식으로 맺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500년대 중반에서 1600년대 중반 사이의 백 년 사이에 유럽인들이 집중적으로 활동한 이외에는 중국과 비교할만한 현상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나가사키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인이 활동한 사실이 주목되지만, 청나라의 광둥과 캬흐타에서도 여러 유럽 국가들이 데지마에서와 같은 활동상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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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는, 중국이 유럽의 존재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서 자국 내에서 활동하도록 내버려 둔 반면에 유럽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유럽의 존재를 심각하게 여겨서 그들의 활동을 철저히 통제한 반면 유럽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이 최소한 중하급 사무라이와 상인 계급에서는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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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시점에 일본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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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에서 한일 관계는 한-미-일 관계에 종속되어 있고, 더 넓게는 한-미-일-오스트레일리아-인도-사우디아라비아 대북한-중국-러시아-파키스탄-이란의 갈등 구도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 구도 속에서 일본의 위치와 한국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실수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지소미아 협정 연장 여부를 둘러싸고 발생한 한국 내의 혼란은, 한국 시민들이 이러한 구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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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구원군을 파견한 고대 일본과 고려를 침공한 왜구가 활동하던 중세 일본, 조선을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과 통신사를 통해 조선과 교류한 도쿠가와 일본, 조선을 멸망시킨 메이지 일본,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52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속국으로서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는 현대 일본 등 일본 열도는 시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었습니다. 각 시기의 일본 국내외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과거의 모습을 잘못 유추해서 현대 일본과의 관계를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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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인이 바라보고 싶은 대로 일본을 바라보는 것은 자유이지만, 잘못된 인식을 갖고 일본과 일본이 속한 국제 세계를 대한다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러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계 속의 일본, 아시아 속의 일본이라는 관점에서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관점을 한국 시민들께 제공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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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덕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이다. 조선, 명, 일본 간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다. 고문헌을 비롯한 다양한 자료에 근거해서 전쟁이 초래한 동아시아 차원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을 추적해왔다. 나아가 한반도가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에 여느 국가와는 다른 궤적을 그렸다는 인식이 실상과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일본에서 펴낸 박사학위논문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 - 한반도, 유구, 오호츠크 해 연안]으로 2011년 외국인 최초로 일본 고전문학학술상을 받았다. 2015년에는 한국 동방문학비교연구회의 석헌학술상 수상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히데요시의 대외전쟁』(공저), 『그들이 본 임진왜란』, 『이국과 일본의 전쟁과 문학』(공저), 『교감 해설 징비록』, 『그림이 된 임진왜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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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이야기 1김시덕 저 | 메디치미디어 |
명확한 관점과 시각으로 일본의 역사를 바라보기를 원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줌과 동시에 역사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보편적 통찰을 제공한다.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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