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동화작가 김남중 “우리 동화도 전 세계로 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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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 시리즈는, 바다 저 멀리, 그것도 현재가 아닌 17세기 조선 시대로 눈을 돌렸다. 작가는 1653년 일본으로 가려다 제주도에 난파한 헨드릭 하멜의 표류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되었던 하멜은 1666년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한 뒤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이른바 『하멜 표류기』? 를 출간해 유럽 전역에 조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멜과 함께 유럽으로 간 조선의 아이가 있었다면?” 하는 작가의 상상에서 태어난 주인공 해풍이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과감히 거부하고 남중국해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대양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모험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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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년생 13살 주인공 소년 해풍이가 1666년 하멜과 함께 여수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떠나,?인도네시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네덜란드, 서인도제도, 멕시코를 횡단해 태평양을 건너기까지, 꿈틀대는 세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드넓은 대양을 누비며 온 세상을 가슴에 담는 4년 동안의 성장과 대모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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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분량의 어린이 대하 역사 동화 시리즈는 거의 국내 처음입니다. 17세기 조선 시대라니, 낯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영화에서나, 사극에서 많이 다뤄진 소재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을 이런 큰 시리즈로 이끈,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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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나는 바람이다 1, 2』? 권을 출간하기 전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원래 계획은 해풍이가 하멜과 함께 일본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2권의 끝 장면으로 강한 여운을 남기려고 했어요. 17세기의 조선은 쇄국정책 속에 숨어 있었는데 국제정세는 이와 반대였지요. 조선이 점점 자폐의 길로 나아갈 때 강대국들은 사냥감을 찾아 대양을 헤맸고 그 결과가 결국 1910년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비극으로 나타났어요. 역사에서도, 문학에서도 ‘~했더라면’ 하는 가정은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게 역사가 문학으로 전환되는 동력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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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이가 유럽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으로 원고를 마쳐놓고 출간되기 전까지 고민했어요. 작품 하나를 끝낸 시원함보다 뭔지 모를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출간 발표회 날이 가까워서야 그 이유를 알았어요. 해풍이가 만날 17세기의 세계를 저도 보고 싶어서였어요.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거라고 느꼈지만 지금 아니면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초조함도 있어서 불쑥 다음 편을 쓰겠다고 발표했어요. 처음에는 4부 8권 정도 생각했는데 결국 5부 11권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처음 1부가 출간되었을 때, 그 규모와 다양한 취재에 놀란 분들이 꽤 많으셨어요. 실제로 취재 거리가 지구 한 바퀴가 넘었다고 들었는데 세계 어디를 직접 다녀오신 건지요? 그리고 그런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간 취재와, 또 해양 소년소설답게 항해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을 따로 하신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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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바다에 관심이 있었어요. 바다 이야기를 써보려고 범선을 타고 일본에 갔는데 거기서 하멜의 흔적을 발견했죠.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 하멜은 거의 조명 받지 못하는 인물이에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의 불씨를 찾았다 생각해서 대략 취재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작품을 구상하고 다음 해 다시 일본에 가서 정밀한 취재를 했어요. 돌아와서는 바로 원주의 토지 문화관에 들어가서 1, 2권을 썼죠. 3권부터는 취재 범위가 훨씬 넓어져서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멕시코, 쿠바에 갔는데 집필보다 취재가 더 힘이 들었어요. 주인공의 동선을 잡고, 역사적인 접점을 확인하고, 현지에서 취재하며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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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경험을 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다로도 나갔어요. 범선으로 일본을 2번 갔고, 여수에서 독도까지 항해하기도 했고, 카누로 울릉도 동쪽을 돌아보기도 했어요. 알래스카에서 광양항까지 항해한 경험도 바다 이야기를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취재를 가면 그곳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는 체험도 빼놓지 않았어요. 10권 작가소개를 보시면 절반쯤 옷을 벗고 카리브해에서 작은 요트를 타는 사진이 나와요. 그땐 정말 신났었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 해풍이가 홀랜드 즉 네덜란드에서 조선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서인도제도 그리고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해풍이를 멀고도 먼 모험 속으로 밀어붙인 연유가 있을까요? 또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쓰시려면 고비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는지, 이야기 중 가장 애착에 남는 배경지는 어디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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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갈 때 되도록 간 길과 다른 길로 돌아오려고 해요. 그게 여행을 200%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해풍이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배를 타고 갔던 길 그대로 돌아온다면 이야기의 중간쯤에서 힘이 많이 빠졌을 것 같아요. 작품이 전체적으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영향력 안에서 진행되는 모양이 될 거고요. 처음부터 세계 일주를 할 계획이었고 그래서 찾은 경로가 서인도 회사의 노예무역과 스페인의 태평양 무역로예요. 해풍이에게는 필사적인 선택 끝에 우연히 찾아낸 길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분명히 연결된 부분이죠. 작품을 쓰면서 주인공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나는 바람이다』? 쓰면서는 그런 생각을 종종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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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대부분을? 『나는 바람이다』? 와 함께 했어요.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고비는 별로 없었어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한 발자국씩 멈추지 않으면 결국 끝난다는 걸 아니까 세워놓은 계획 따라서 뚜벅뚜벅 걷기만 하면 되거든요. 계획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하죠. 설계도를 잘 만들수록 결과에 대한 신뢰가 늘어나니까요. 위기는 오히려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왔어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제가 믿었던 가치에 대해 뿌리부터 흔들리던 기간이 몇 년 있었어요. 정말 외로웠는데 그때 『나는 바람이다』가 제 중심을 잡아 줬어요. 이 책을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없었다면 지금쯤 여기와 아주 다른 곳에 있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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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었던 배경지는 멕시코예요. 오래 역사와 엄청난 문화유산, 아름다운 자연과 좋은 사람들, 혁명의 역사가 있는 곳인데 외국의 개입으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국민들이 겪어낸 험난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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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해풍이 같은 인물이 실제로 있어서 조선 밖 드넓은 세계를 탐험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다면, 작가님 생각에 조선의 끝은 좀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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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한두 사람의 힘으로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해풍이 같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면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역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말로 다른 사람을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보다 실제로 땀 흘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역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몰랐던 것, 알게 되면 생활이 바뀌는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면 사회가 바뀌고 역사가 바뀐다고 믿습니다. 해풍이는 우리나라 아이 가운데 최초로 커피를 마시고, 치즈를 먹고 아보카도와 빵나무 열매와 코코넛을 먹어요. 해풍이가 조선에 돌아와 풍차를 만들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하면 재미있어요.??


각 부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가령, 1부에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온 도공, 2부 바타비아에 갔을 땐 자바섬 독립운동을 벌이는 소년 아디, 또, 4부에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왔지만 자신이 전사임을 잊지 않는 코코 같은 인물이 그러합니다. 어떻게 보면 17세기 후반의 전 세계의 핵심적인 사건을 많이 다루셨는데요, 그런 인물들을 다루시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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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기에 그 이면을 바라보는 눈도 중요해요. 승리와 풍요 뒤에는 패배와 수탈의 그림자도 함께 있으니까요. 저는 동화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영웅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역사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 세계사로 눈을 넓혀도 마찬가지로 지배자보다는 피지배자의 역사가 더 배울 것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문학의 역할이 존재에 대한 공감과 소통이라면 역사를 다룬 문학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공감과 소통이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역사에 기록된 승리자와 그 발에 짓밟히면서도 인간성을 지키려하는 사람이 어우러진 결과가 역사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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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이는 결국 조선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이상국을 건설합니다. 왜 조선 여수라는 고향 대신, 머나먼 곳으로 해풍이를 안착시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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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이가 모험 끝에 보물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신밧드의 모험’과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결말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힘든 모험을 세세하게 따라가지 않았겠죠. 조선의 현실적인 상황에서 해풍이의 귀환은 비극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높아요. 국법을 어기고 외국인과 접촉한 죄, 조선을 허가 없이 떠난 죄, 조선의 존재와 정보를 외국에 발설한 죄, 외국 세력과 결탁하려 했다는 혐의 등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겠죠. 그렇지 않고 무사히 정착했다 하더라도 세계를 가슴에 담은 해풍이가 평범한 어부로 만족하며 살지는 못했을 거예요. 해풍이가 꿈꾸고 만들어낸 세상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위미가 있어요. 그 마지막 공간을 꿈꾸고 찾기 위해, 그 공간을 만들고 지킬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해풍이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았던 거지요.


독자들이 11권의 긴 이야기를 읽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작가님이 알려 주시는 재미있게 읽는 비법이 있을까요? 만약 11권 도전에 성공한 독자들이 있다면, 해주시고 싶은 얘기는 어떤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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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른들도 긴 이야기를 읽어내는 독자들이 드물어요. 감각적인 재미를 내세운 작품이 아니면 여러 권짜리 시리즈에 손이 쉽게 가지 않아요. 그걸 알면서도 이 작품을 쓴 건 책 읽기가 도전과 모험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편한 책, 익숙한 책만 읽다 보면 책이 주는 더 큰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바람이다』? 에 도전하는 독자들은 진짜 모험을 떠나듯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면 좋겠어요. 11권 시리즈 읽기는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도전이기 때문에 그 도전을 마쳤을 때는 자기만의 보물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어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지구본이나 세계지도를 옆에 두고 읽기를 추천해요. 책을 읽다가 문득 해풍이가 어디까지 와있나 찾아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11권 읽기를 마친 독자를 만난다면 카페에서 핫초코 사 주고 싶네요. 세계 일주 축하 기념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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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일단 해 보자. 앉아서 걱정만 하지 말고.” 이 문장이 워낙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작품으로 우리 동화 장르에서 뭔가 변화의 바람을 꿈꾸셨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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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 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어떤 변화를 가져올 만한 영향력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에요. 금메달 하나보다 동메달 여러 개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작품도 여러 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큰 흐름을 이루는 게 더 좋아요. 제가 바라는 건 우리 동화에서 다루는 공간감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대륙과 대양으로 훨씬 넓어지는 거예요.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좋고, 우리가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뤄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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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어린이들이 갇혀 있는 학교와 집과 학원의 강철 삼각형,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 중심의 대학과 대기업, 고소득 전문직, 정년 보장 정규직으로 인생의 성공 유무가 판단되는 한국식 인생의 척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가고 싶은 곳을 꿈꾸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남과 다른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꿈꾸는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세계지도를 보며 더 넒은 공간과 다양한 경험을 동경하는 모험가적인 삶이 멋지지 않나요? 통일이 되어 힘든 적응기를 벗어난다면 그럴 수 있을 거예요. 동화가 먼저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과 가능성을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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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1972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고,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에 소년소설 『기찻길 옆 동네』로 제8회 창비 ‘좋은 어린이 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동화집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바람처럼 달렸다』로 제1회 창원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동화집 『동화 없는 동화책』 『공포의 맛』, 장편 동화 『불량한 자전거 여행』 『싸움의 달인』 『나는 바람이다 1~7』, 청소년소설 『보손 게임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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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김남중 글/강전희 그림 | 비룡소
직접 범선을 타고 항해했고,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쿠바 멕시코, 태평양의 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나라를 직접 답사하며 취재하여 마침내 조선의 소년을 세계의 무대에 올려놓는 대서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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