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번뜩이는 순간이 하루를 버티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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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은 노래와 글과 영화를 만든다. 만화를 그리고 책을 펴낸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라는 프로젝트로 암에 걸린 친구의 치료비를 보태는 프로젝트도 기획했다. 요즘은 때에 따라 뮤지션으로, 작가와 감독으로 소개하는 이름 앞에 ‘자영업자’라는 말이 추가되었다. 창작도 그에게는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일에 대한 대가를 조금 더 명확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랑이 처음으로 소설집을 냈다. 제목은 『오리 이름 정하기』? .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을 것만 같은 사람이지만 작가의 말에는 이야기를 만드는 직업인으로서 겁에 질리는 순간에 대해 말했다.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 한국의 여성 창작자는 종종, 아니 자주 자신의 결과물에 자신감을 잃는다. 그래서 더욱 무기력을 이겨내고 소설을 썼다. 겁에 질리지 않고 쓰기 위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존중할 수”(266쪽) 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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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치를 믿기까지
SNS에 ‘섭외 환영, 인터뷰 환영, 도움 환영!’이라고 썼어요. 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물건을 만들었으면 팔아야죠. 책 파는 기간이에요. (웃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이후로 인터뷰 제안이 많았었죠. 인터뷰에 대해서 대가 없이 노동하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마다 매체에 비용을 요청하고 있어요. 보통은 돈 이야기가 오갈 때 메일만 주고받아도 많은 걸 알게 되잖아요. 다짜고짜 돈 달라고 하는 건 아니고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차근차근 말씀드려요. 집필비에 대해서는 가격 측정이 되어 있지만, 홍보로 인터뷰를 할지라도 홍보 활동을 하는 노동력에 대해서 가격 책정을 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거죠.
이메일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메일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서 작업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더라고요. 이미 정해진 일뿐만 아니라 거절해야 할 일과 미뤄야 할 일도 이메일로 답장해야 하니까요. 몇 년 동안 혼자 해 오다가 올해부터 다른 분께 맡기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영업자’라고 표현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좋아하는 일이라면 돈을 안 줘도 된다는 인식 때문에 돈을 못 받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때부터 다른 표현을 찾았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때도 있었고, 이야기 제조업자라고 말할 때도 있었고요. 예전에는 아티스트라는 말을 고집할 때가 있었어요. 예술가가 다른 직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나중에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예술가라고 우월감을 가지는 분위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반대로 예술가라고 하면 비용을 주지 않고 후려치거나, 여러 가지 사회적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주기도 해요. 아티스트라는 말 안에 너무 많은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많이 쓰죠. 자영업자라고 하면 조금 더 직업에 가깝다는 느낌이 있어요.
맞아요. 그래서 보통 작업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업무 중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토크 행사에서 시간이 끝나고 말을 걸면 농담처럼 셔터 내렸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 ‘김경형 이야기책’을 기다린다고 쓰셨어요. 김경형은 어머니 이름이에요. 어머니가 겁에 질리지 않았다면 세상에 더 많은 ‘김경형 이야기책’이 있을 거라고요.
작가의 말에 뭘 써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편집자님께서는 어떤 독자들에게 읽히면 좋겠는지 생각하고 쓰면 된다고 하셨는데, 뭔가 만들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걸 봐야만 하고 사야만 한다고 말하기에는 항상 부끄럽거든요. 계속 결과물을 내면서 이게 가치가 있는지 물어보면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박강아름 감독님이 자신이 한 작업을 두고 너무 가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직 잘 믿진 못하지만 가치가 있다고 믿어 보자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텐데, 우리가 한 명 한 명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믿어주면, 좀 더 편하게 글도 쓰고 창작을 즐거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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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 나오는 날, 작가의 말을 SNS에 올렸어요.
설리 씨 사망 기사가 나온 날이었어요. 그날 전에도 설리 씨 SNS 라이브 방송을 본 적이 있거든요. 많은 사람이 실시간 댓글을 달고 있는데, 그 분이 말 한마디 없이 댓글을 보는 표정만 몇 분 동안 나오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방송을 껐어요. 그분도 그렇고 여러 사람이 자기 삶에서 하는 일들이 가치 있다고 믿으면 좋겠는데, 겁을 먹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걸 했을 때 칭찬보다는 공격 한 줄이 평생 기억에 남게 되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 썼던 엄마의 삶에도 분명 그럴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자기 기록을 다 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힘이 되었다는 분도 많을 거예요.
먼저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죠. 저 역시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된다는 환경에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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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행위가 주는 쾌감
대본, 독백, 대화 등 다양한 형식이 녹아 있어요.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대본 형식은 익숙한데, 소설처럼 보이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다른 분들 소설을 읽었어요. 말 따옴표를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하고 다들 다양하게 쓰더라고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구나 싶었어요.
벌어질 법한 상황을 이야기로 썼어요. 이야기 안에 현실에 있는 장면을 담았을 때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이따 오세요」와 「섹스와 코미디」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아마 현실에서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행동을 할 수는 없겠죠. 그때 작은 복수라도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시원함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따 오세요」에서 세탁기 호스를 자르는 장면에서는 원초적인 후련함이 느껴졌어요.
누군가 주인공이 왜 호스를 잘랐는지 너무 궁금하다면서 새벽에 DM을 보낸 적이 있어요. 자취를 해보셨다면 세탁기 호스를 다시 사러 철물점에 가야 하고, 수도랑 호스랑 맞게 설치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알 텐데 물어보시더라고요.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주로 책에 썼는데, 예술 하는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신기하거나 낯선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상상해서 쓰는 걸 잘 못 해서, 경험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써보고는 싶어요. 제가 잘 모르는 상황을 쓰면 재미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더 황당하게 신들이 나오는 회의장을 그리는 거죠.
앨범 <신의 놀이> 때도 그렇고, 신을 자주 불러내요. 삶에 대해서 신에게 ‘나는 왜 살죠?’ 질문하면 끝이 없잖아요. 빠질수록 답도 없고 허무감만 드는데,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는 굴레에서는 어떻게 벗어나고 있나요?
아직 못 벗어난 것 같아요. 그 질문은 너무 무겁고 저를 매일매일 따라다녀요. 매일 살아있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힘들거든요. 다만 다들 이유도 모른 채 괴롭게 사는 가운데 가장 공통화된 코드로 농담을 할 때, 권력이나 돈, 신이나 부자를 뒤집어서 개그로 쓰면 짜릿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사람들과 이야기로 같이 대화하고 상상하는 행위가 주는 쾌감이 커요. 재미있고 신기하고 번뜩이는 순간으로 그날 하루를 살아나가는 것 같아요.
「똥손 좀비」는 드라마 촬영 현장이 배경이에요. 당한 사람은 많지만 정작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없어 보여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라는 대사처럼요.
기업은 얼굴이 없어요. 돈과 권력이라는 이미지만 있죠. 비슷하게나마 회사를 대표하는 담당자는 있겠지만, 그 사람이 기업은 아니에요. 영화나 드라마, 방송 촬영장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어요. 드라마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스텝들이 과로사 하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현장에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거예요. 너무 싫지만 허겁지겁 일을 끝내야 하니까 썩은 얼굴로 일하는 거죠. 일손을 멈추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도 그걸 못해요. 재난 상황이 되거나 멸망하거나, 좀비 떼가 나타나는 상황이 되어서야 멈추죠. 멈추지 못하는 건 모두 개인의 선택일 텐데, 모두가 멈추자고 선택하면 좋겠다는 희망만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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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은 좀비 이야기로 시작해요. ‘좀비가 되자!’고 말하면서도, 막상 세상이 멸망한다면 정말 열심히 살아남을 것 같다는 생각할 때가 있어요. 어쩌면 ‘죽어 버리자’는 말이 살고 싶다는 뜻처럼 비치기도 하고요.
「하나 둘 셋」에서는 죽고 싶다는 문제보다는 왜 항상 인간의 관점으로 그리는지가 가장 큰 질문이었어요. 외계인 침공 영화나 귀신 영화를 보면 기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무서운 일을 저지를 거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는 영웅이 나타나서 다 이기고 인간이 최고라고 하죠. ‘이쪽 입장은 왜 안 들어?’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사회에서도 자기가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존재가 나타났을 때, 예를 들어 성소수자가 나타난다면 난 모르겠고 무서우니까 꺼지라고 하잖아요. 사람들이 쉽게 자기가 알고 있는 개념을 벗어난다 싶으면 그걸 공격하는 행태가 항상 불편했어요. 그걸 어떻게 하면 이야기에 버무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외면으로 표현할지, 글로 할지, 발언으로 할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도구에는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아요. 글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요.
사실 말만 하면 제일 좋아요. 음악이나 글은 다듬어야 하잖아요.
퇴고를 많이 했나요?
엄청 많이 했어요. 편집자님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거의 교정지 전쟁을 벌였죠. 소설집을 처음 내보는 거라, 이야기 흐름 전체를 뒤흔드는 코멘트를 받으면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몰랐었어요. 편집자님이 제시한 방향을 그대로 쓰면 그분 글이 된다고 생각해서, 조언을 듣고 난 뒤에 저만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장한 느낌이었나요?
괴로우면서 재밌었어요. 평소에도 일하면 타협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서 저도 당연히 제 이유가 있지만, 상대방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또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서 고쳐나가는 과정이 재밌어져요. 낯선 것들을 대할 때 이 방식을 취하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생각하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제일 큰 능력인 것 같아요. 이런 걸 사람들과 같이하고 싶어요.
「깃발」의 마지막에서는 주인공이 예술이라고 적힌 깃발을 꽂아요. 예술이 종교와 믿음의 자리를 대체한 것 같았어요.
종교가 믿음을 근거로 해온 일들을 다 후려치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그 믿음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마음 반이 섞여서 썼어요. 진짜라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진짜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잖아요. 신도 마찬가지에요. 신이 진짜라 할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계신다고 표시한 건물 안에서 모이는 것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우습고 장난 같으면서도 제가 그걸 진짜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섞어서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쓰려고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조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글쓴이가 역시 예술의 힘을 믿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창작을 하면서 몰입하는 경험을 할 때도 있나요? 종교적 경험처럼요.
그런 거 없어요. 과몰입해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일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장난을 많이 칠 수 있어요. 집중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을 때도 있는데, 어떻게 몰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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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 같기도 해요. 몰입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거죠.
춤을 추거나 할 때도 기능으로서의 춤을 추는 편이에요. 보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선이 길어 보일지, 어떤 효과가 날지 생각하는 반면에, 빠져들어서 추는 사람도 있잖아요. 항상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해요. 요즘은 협업 하면서 동료 뮤지션들이 순간적으로 확 몰입해서 감정을 끌어올리는 걸 지켜볼 때, 뭔가 못 느껴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제 친구 표현으로는 작두를 못 탄다고 하더라고요.
뮤지션 이랑은, 작두를 타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일까요?
공연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사람을 건드려야 하는 순간은 계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되게 몰입해서 힘든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감동하거든요. 이건 일이고 연기하는 거라고 하면 실망하시기도 하는데, 제 역할은 사람들이 돈 주고 보러 왔을 때 자기가 상상한 느낌을 주는 역할이니까요. 술 취해서 컨디션 조절 못 한 채 비틀거리는 게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걸 예상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끌어올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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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노래를 만드는 방식과 소설을 쓰는 방식이 다른가요?
어떻게 쓰는 걸까요? 매일 제가 쓴 글을 보면, 제가 쓴 노래를 들으면 신기한데요.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쓰는 방법은 있을 거예요. 시작은 메모인 것 같아요. 다양한 매체로 메모를 해요. 영상, 음성, 사진, 글, 종이에 쓰는 메모… 제가 저한테 문자 보내는 방식도 자주 써요. 「섹스와 코미디」도 ‘고치지 못한 바이브레이터를 들고 돌아다니는 이야기’라는 메모 한 줄이 이야기의 발단이었더라고요. 메모 전에 중요한 건 사실 수다예요. 혼자서 공상할 때는 많지 않고, 오히려 수다 떨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정리해요. 대화를 따 놓고 쓰기도 하고요.
20대의 결과물과 30대의 결과물이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이와도 관련 있겠고, 제가 알게 된 여러 가지 인식이나 지식하고도 연관이 있겠죠. 이제는 젊은 여자로서 대상화 되기 쉬운 방식으로 인정받는 것에 급급했던 행동을 안 해도 되는 게 가장 큰 이유지 않을까요. 하지만 20대 때는 이 이야기를 들었어도 아마 괜히 밉게 말했을 거예요. 내가 잘 나가서, 질투해서 저렇게 말하는 거라고 여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알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프로젝트도 이제 막바지죠. 창작자 30명이 모여서 친구의 치료비를 모으는 프로젝트였어요.
프리랜서 창작자를 위한 느슨한 치료비 도움 계 같은 걸 만들고 싶었었어요.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인세가 너무 적어지면서 작가분들에게 계속하자고 하기가 미안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끌어보려고 겪었던 과정이 공부가 많이 됐어요.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지만 자기 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을 알게 되는 경험이 확장됐고요. 제 시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넘어서 사람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알리바바 프로젝트로 생겼을 때 기뻤어요.
일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 편이에요?
집에서는 누워 있고 눈뜨면 나와서 바로 일을 하고, 끝나면 집에 가서 누워 있어요. 일어났을 때 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불안증이 심해져요. 밥 먹는 것 자체도 귀찮고 시간 쏟는 걸 싫어해서 자꾸 몸과 정신이 안 좋아지는 방향으로 일을 하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하는데…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러고 있죠?
그러고 있어요. 친구들도 암묵적이나마 어쨌든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고 많이 말하더라고요. 프리랜서 시간이 다 비어있다고 일을 내내 하면 안 된다고요. 느낌상 쉰다고는 하고 작업실 나와서 업무가 아닌 느낌의 일을 한다든지 그래요. 업무 종류도 너무 다양해지다 보니 사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음악, 글, 엑셀…… 일본어로 소통할 일도 많고, 정신이 없어요.
매일 일하기 싫어서 우는데, 돌아보면 작업물은 많이 쌓여 있어요. 일을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돈 벌어야 돼서요. 정말 돈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할지 정한다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요. 그럴 때 노래하면 무슨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쉬면 어떨지 상상할 수가 없어요. 한국 사람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웃음)
마지막으로 김경형 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음… “일기 쓰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엄마를 만나면 일기장을 사줘야겠어요. 금박으로 연도가 표시된 가죽 표지의 A4 크기 다이어리로요. 그게 진짜 많이 있었는데, 같은 걸 사주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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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름 정하기이랑 저 | 위즈덤하우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라고 물었던 이랑 작가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회에서 끄트머리로 밀려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의 삶을 주연으로 끌어와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보편적 인식에 균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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