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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제주에는 유채꽃이 피지만, 4월 3일만큼은 봄의 아름다움보다 먼저 떠오르는 아픔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 4·3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비극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기념 집회에서 경찰이 군중을 향해 발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민심이 악화되었고, 이후 경찰의 강경 진압과 군경의 토벌 작전이 이어지면서 도민들의 희생이 커졌습니다. 분노한 민심은 곧바로
들끓었고, 3월 10일 제주도 전역에서 총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3월 1일 발포자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정부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 3일, 제주도 곳곳의 오름에서 봉화가 타올랐습니다. 제주도 민중들이 들고일어난 무장 봉기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제주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고 초토화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섬 전체가 고립되었고, 죽음의 섬이
되었습니다. 이 참극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 해제와 함께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후 반세기 가까이
‘제주 4·3’은 금기의 역사로 남았습니다. 생존자들은 입을 열지 못했고,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는 역사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아픔을 오랫동안 외면하며 지내왔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니라 국가 폭력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입니다. 2000년대 이후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이 이루어졌으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우리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 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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