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성공한 덕후, 유럽 가다] (1) 추석 당일 헤르만 헷세 성묘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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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부터 21일까지 11일에 걸쳐 유럽을 다녀왔다. 이른바 북스피어 유럽서점 떼거리유랑단 3기였다. 들른 지역인 각각 이탈리아 밀라노, 루가노, 스위스 취리히, 독일 프랑크푸르트, 뒤셀도르프, 네덜란드 안홈, 암스테르담 등이었고 이외에도 거론하지 않은 소도시가 상당수 있었다. 다녀온 곳을 순서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덕후답게, 이번 여정에서 가장 덕후스러운 관광 코스였던 세 곳에 대한 이야기만 적기로 결심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세 차례에 걸쳐 헷세, 괴테, 고흐를 만난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려 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첫 회, 헷세를 만난 사연은 특히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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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고 싶다. 추석 당일, 헤르만 헷세의 성묘를 간 사람은 몇 명이나 되냐고.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는 열두 명이다. 이번 서점유랑단을 함께 떠난 멤버 12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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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 출간한 『셜록 홈즈의 증명』 앤설러지에 「성북동, 심우장 가는 길」이라는 단편을 게재한 바 있다. 이 단편 속 주인공은 추석에 성북동 심우장을 찾는다. 여자는 전철역에서 내린 후 마을버스를 탄다. 산꼭대기에서 내린 후 굽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냈다는 심우장에 도착한다. 헷세의 집은 이런 심우장을 떠올릴 만한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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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를 떠나 루가노로 향했다. 역에 도착한 후 마을버스를 탔다. 버스는 빠른 속도로 한참 산을 오르다가 이런 곳으로 버스가 다녀도 될까 싶은 일방통행 길에 들어섰다. 이렇게 버스가 향한 종점이 우리가 내려야 할 곳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종점에서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 헷세를 만나러 온 여행객이었다. 하지만 종점 주변엔 헷세 뮤지엄이 보이지 않았다. 몇몇 여행객들이 우리에게 길을 물었다. 우리를 인솔한 유로스테이션의 김신 대표는 이런 그들에게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반대편, 벽돌길이 깔린 좁은 골목을 가리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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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한가람미술관이다. 대학 시절, 이곳을 자주 들락거리면서 미술관을 접하기 시작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인사동이며 혜화동 어귀를 얼쩡거렸다.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 미술관에서 소소한 굿즈를 챙겼다. 엽서부터 시작해 뱃지라던가, 노트라던가. 이곳 기념관에 도착할 무렵에도 나는 가장 먼저 굿즈부터 떠올렸다. 제주도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처럼 손수건, 장갑, 머그컵 등 갖은 것들이 있을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굿즈라고 할 만한 것은 엽서나 헷세의 책정도 뿐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덕분에 나는 헷세,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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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이 낮은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헷세가 글을 썼을 법한 장소가 나온다. 그의 책상에 앉는다. 타자기에 손을 댄다. 그러자면 아주 조금은 내게도 헷세의 영감이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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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세가 된 듯 망중한을 누리다 기념관을 나왔다. 다음 여정은 헷세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예전 헷세가 즐기던 산책길, 커다란 루가노 호를 둘러싼 길을 걸으며 기념관을 세웠다는 헷세의 친구를 떠올렸다. 기념관 다락, 헷세의 친구가 갖고 다녔다는 지팡이가 있었다. 나는 그 지팡이에 손을 댔었다. 공중에 떠서 흔들리는 지팡이를 흔들며, 이 지팡이를 잡고 헷세와 걸었을 길을 상상했다. 그 상상을 바로 현실로 이룰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은 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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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 들른다. 헷세가 먹었다는 등갈비를 대접받는다. 정말 헷세가 이곳에서 커피와 등갈비를 먹었을까? 하지만 헷세가 앉았다던 지정석의 이야기를 듣자면, 시든 화분 몇 개밖에 놓이지 않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자면, 믿고 싶어진다. 가끔 여행의 묘미는 이렇듯 소소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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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나와 걷는다. 헷세는 실제로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을 산책했다. 그런 헷세를 따라 걷자니 이내 공동묘지다. 이곳에 잠들었다는 헷세의 이름을 찾는다. 가장 화려하게 기록된 묘비를 발견한다. 그곳에 헷세의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 헷세는 내가 만나고픈 사람이 아니다. 헷세의 묘는 뜻밖의 장소에 자신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소심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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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의 추석명절을 모르리라. 아마도 이 계절에 헷세를 찾아 성묘하는 이들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처음일 지도 모른다. 나는 헷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묵례하며 추석을 잘 쇠시라고, 나는 언젠가 당신과 같은 길을 가고 싶다고, 그 결심을 되새기고자 지금 이 곳에 왔다고 마음 속 깊이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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