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리뷰] <마스크 걸>, 여성 아닌 ‘여자’, 그리고 ‘엄마’의 비뚤어진 이야기
2023.8. 18. 한국 7부작
감독 :김용훈
출연 :이한별, 나나, 고현정, 염혜란, 안재홍 등
줄거리 :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벌어지는 이야기로,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마스크 걸>이라는제목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사연과 이를 원인으로 뭔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이어질 것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신인 배우 이한별과 나나, 고현정까지 3인 1역의 드라마라는 점도 시선을 끌었다. 2인 1역까지는 심심치 않게 보아왔지만 3인이라니 기대와 우려는 반반이었다. 연기의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춤과 노래로 주목받으며 이를 즐겼던 김모미. 그녀의 성장은외모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결국은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직장인(거의 왕따를 당하는 지경)이 된다.꿈을 포기한 대신 밤마다 ‘마스크 컬’이라는이름으로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한다. 마스크 속의 모미는더 없이 화려하고 섹시한 춤선과 애교로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잘 생긴 팀장(유부남)의젠틀함에 마음을 뺏기지만, 이미 사내 불륜으로 얼굴값 하는 중임을 알게 된다. 이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술에 취해 나체 방송을 하게 되고, 좌절해있던 그녀에게 ‘핸섬스님’이 건넨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예쁜 얼굴”이라는 사탕발림은 위로가 되었을까. 경계를 푼 모미는 본심을 드러내는 핸섬스님과 몸싸움을 하다 그를 죽이게 된다.
그 때 걸려온 전화. 같은 회사 동료인 주오남이다. 그는 모미의 직장 동료이자 외모 콤플렉스와 성집착증(?)을 앓고있는 남자로, 마스크 걸 방송의 애청자다. 우연히 회사에서모미가 마스크 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 대한 짝사랑을 키우다 못해 집착으로 넘어가는 중. 모미를 위해 대신 핸섬스님의 시신을 처리하겠다고 할 때는 얼마나 큰 사랑일까 싶었는데, 그건 단지 삐뚤어진 소유욕과 집착일 뿐이었다.
여기서 주오남의 오타쿠적 행동, 손톱만큼의 동정도 아까운 찌질함을 보여준 안재홍의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수리가 훤하게 보이던 윗머리는 눈썹 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 특수 가발이라고 한다. 강력한 존재감으로 모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게 될 주오남은 모미의 약점을 이용해 성추행 하다가 얼음송곳에 찔려일찌감치 죽음을 맞이한다.
주오남의 죽음이 영화 <원초적 본능>을 떠올리게 하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얼음송곳이라는 낯선 도구를살인에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드라마가 이를 차용한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원초적 본능>에서 얼음송곳은 샤론 스톤이 분한 캐서린의본능, 즉 자신이 구현하고자 하는 허구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부수고,이를 실현시켜주는 도구였다. 모미에게도 이제 성형을 마치고 새롭게 만들어질(허구) 세계로 가는 길을 만들어주는 도구였지 않았을까. 주오남을 죽인 이유도 ‘모미’로살았던 현실과 ‘아름’으로 살아갈 미래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기위해서일테니.
추녀 모미의 이한별은 신인답지 않은 과감하고 세밀한 연기로 그 역할을 마무리하게 된다. 쇼걸 아름으로 분한 나나의 출연. 아름과 춘애의 에피소드는 남성의폭력성에서 해방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시켰다. 쌍둥이처럼 호흡을 맞추며 노래하고 서로를 지켜주며힘이 되었던 짧지만 모미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합심해서 살인을 하는 것이라 많이 안타깝다. 이들의시간은 주오남의 엄마가 등장하면서 공고히 되었다가 춘애의 죽음으로 처참히 깨어진다.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는 아들 하나만 끔직하게 아끼는 드센 엄마. 연락두절된 아들을 찾아 나서고, 시신을 마주하고 나서는 그의 죽음에 복수를 결심하는 범상치 않은 엄마다. 김경자는 춘애를 죽이고, 모미는 김경자를 죽임으로써 무슨 이야기가남았을까 싶었는데, 맞다. 모미의 아이가 있구나. 주오남의 아이…
처음 블랙코미디로 시작했던 <마스크 걸>은 범죄물로 장르를 갈아타더니, 주오남 엄마 김경자의 등장으로넘치는 모성애를 빙자한 미스터리 복수극이 되었다.
모미는 딸 미모(갓난아기)를엄마에게 맡긴 뒤 감옥에 가게 되고, 감방 생활이 흑백으로 그려지면서 고현정 출연 편과 대조를 이룬다. 아마 이 시기가 모미에게는 모든 것을 잃고 희망마저 사라진 시기였을 것이다.그저 깡만 남아 죽기 살기로 덤비고 깨지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춘애와의 행복한 시절의 연기도 좋았지만, 감옥에서의 나나 연기가 퍽이나인상적이었다. 눈빛, 입꼬리를 비롯한 표정 하나 하나부터악쓰며 달려들고, 트랙을 따라 달리는 모습까지 소름끼치게 처절해 보였다. 세상에 검은 색과 흰 색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빛과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세 번째 모미의 등장으로 좀 루즈해지기도 하고 “왜? 갑자기”라는 의구심과 함께 맥이 풀린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1047번 고현정은 그런 관객에게 조곤조곤 연기로 얘기하기시작했다.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동기가 생겼다. 김경자로부터 딸 미모를 지켜야한다는 명분. 그녀도 엄마였으니까,
죽었다고 생각했던 김경자의 등장은 그리 놀랍지 않은 반전으로 스토리를 이어나갈 놀라운 동력을 제공한다. 온전히 염혜란의 '끝 모를 연기력'과, 김경자의 비뚤어진 모성과 집착, 거기에 성형과 연기력(미모에게 접근하고 온갖 해꼬지를 하는 모습)까지 합쳐져 모미 뿐 아니라 미모의 삶까지 들었다 놨다 한다. 마지막회의 김경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바르뎀의 모습을 하고,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처럼아들 때문에 부수고 때리고 총 겨누기를 서슴지 않는다.
역시 보통의 흔한 엄마는 아니다. 혹자는 여기에 김경자의 종교관도 벼무려 넣기도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은 문외한이라 그저 석연치 않다는 정도로 어물쩍 넘어가 본다.
모미는 끝까지 미모에게 자신이 엄마라고 말하지 않고, 김경자에게도손녀라고 말하지 않는다.
배우 고현정은 “염치 없어서” 엄마임을밝힐 수 없는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말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아마 모미는 미모의 미래를 지켜주고싶었을 것이다. 엄마로 남아 미모에게 마음의 짐을 얹고 싶지 않았겠지.누구(모미와 주오남 둘 다)의 딸이 아닌 인간미모로 성장하고 살아가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김경자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김경자에대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손녀를 죽인 할머니가 되지 않도록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그렇게 모미는 가장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외모에대한 콤플렉스나 그로 인해 치러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은 그렇게 자식을 지켜낸 귀한 죽음으로 마감된다.
고현정의 연기는 좋았다. 그런데 그녀가 잘 하는 스타일의 연기를 고현정답게잘 해냈다고 생각된다. 기품 있게 조곤조곤 얘기하는 그녀의 캐릭터는 나나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잘설명하지 못했다.
감독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중년의 엄마가 되어야 해서 배우 교체를 선택했다고 하지만, 나나에게 그 부담을 좀 줘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나나에서 고현정으로바뀌면서 모미의 성격도 분위기도 설득력 없이 달라졌으니까. 그게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는 평들이 많은이유다.
또 하나, 모미와 엄마와의 관계가 왜 그렇게 어긋났는지, 엄마는 왜 갑자기 모성애가 발현되어 미모를 구하려 뛰어들었는지, 전혀이해시키지 않고 끝나 버렸다. 사실 외모 콤플렉스는 엄마로 인해 더 증폭되었는지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래서 그녀는 그토록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와 화려한 촬영과 편집, 신인과 아역부터기성 배우까지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어 눈에 띄는 한국 드라마이고, 재미도 있었던 것에는 이견이 없다. 넷플릭스 전세계 시청 시간 5080만 시간을 넘기며, '넷플릭스 톱10'의 TV 비영어권부문에서 2주째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몰이중이라니, 더없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미모가 상자를 꺼내고 비디오를 찾아내고 거기서 엄마 모미를 발견하고 미소짓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좋았다. 미모의 표정에 저 아래 깊숙한 곳에서부터 아려오는 마음이 느껴졌다. 비디오는 엄마가 간직해온 화해의 제스처였으며, 이제서야 미모는 진실한모미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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