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리뷰] 한라산 1100고지 습지와 어승생악 탐방로에서 즐긴 눈꽃
지난 한 주 동안 제주는 그야말로 겨울 왕국이 됐다.
며칠간 쉼 없이 내린 눈은 서귀포의 해안가 풍경을 바꿔놓았고, 한라산에는 최대 1m (삼각봉)까지 눈폭탄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한라산은 안전한 등산로 확보와 진입로 제설작업 등을 위해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탐방 통제가 오는 2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아마도 26일(화) 한라산은 최고의 겨울 왕국을 즐기려는 등산 인파로 몸살을 앓게 될 것 같다.
겨울 한라산을 찾는 사람들의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설경인데, 겨울산 등반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영실 코스가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남벽까지 가지 않을 경우 편도 3.7km), 이 코스도 초보자에게는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통상 6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 영실 코스를 등반하는데 7~8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라산에는 가장 짧으면서도 멋진 뷰를 즐길 수 있는 탐방로도 있다. 편도 1.3km의 어승생악 탐방로로, 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아무리 느린 사람이라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본인의 체력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면 우선 어승생악 탐방로를 올라본 후 다른 코스에 도전해보는 걸 추천한다.
또 어떤 이들은 1.3km의 산행조차 내켜하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1100고지 휴게소를 추천한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에 위치한 휴게소인 1100고지 휴게소는 폭설 다음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어승생악, 가장 짧은 한라산 등반 코스
해발 1,169m의 어승생악 출발 지점은 어리목 탐방로와 같은 곳인 어리목휴게소다. 비고는 350m, 총 거리 1.3km로 어리목 휴게소에서 출발해 3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까지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어 걷는 느낌은 딱히 등산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도 할 수 있다.
한라산엔 곳곳에 고로쇠나무가 많은데, 어승생악 탐방로에서는 유독 더 많은 고로쇠나무가 눈에 띈다. 고로쇠나무의 잎은 대개 5갈래로, 잎이 5~7개로 갈라지는 단풍나무와 구분되지만 눈꽃을 보러 가는 겨울에는 잎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어승생악 오름에도 제주의 많은 다른 오름들처럼 일제 동굴진지가 5개나 남아 있다.
어승생악 일제 동굴진지는 1945년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도 내 일본군 최고 지휘부인 제58군 사령부의 주둔지로, 청수리의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가 함락됐을 경우에 대비해 구축한 최후의 저항 거점지였다 한다. 어승생악은 당시 제주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지금도 어승생악 정상에 오르면 제주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반대편 쪽으로는 한라산의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승생악 탐방로의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웬만한 폭설이 아니고서는 눈이 금세 녹아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눈꽃을 즐기고 싶다면 눈이 온 바로 다음날 방문하는 게 가장 좋다.
1100고지 휴게소, 눈꽃에 반하는 드라이브 코스
겨울철 눈꽃 명소가 된 1100고지 휴게소의 맞은편은 한라산 고원지대에 형성된 대표적인 산지습지인 1100고지 습지다. 16개 이상의 습지가 불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이 습지들을 따라 2009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세계 람사르습지에도 등록되었다. 람사르습지에는 1100고지 습지를 포함해 제주도에서 5곳의 습지가 등록돼 있다. 습지 안에는 자연생태탐방로를 따라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어 보존 습지의 다양한 모습을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폭설이 내리거나 하면 습지 탐방로는 개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1100고지 습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곳은 휴게소 부근이 모두 포토 스팟이다.
도로 양 옆으로 순백의 눈꽃이 하얗게 내려앉은 나무들은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 되는 풍경이다.
한 가지 단점은, 주차 공간이 많지 않아 사람이 많이 몰릴 때는 극심한 교통 정체가 유발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작권자 ⓒ리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