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연극 <생쥐와 인간>의 레니로 인생캐릭터 만난 배우 최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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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 초연된 연극 <생쥐와 인간>이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미국 출신 작가 존 스타인벡이 1937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은 두뇌회전이 빠른 조지와 지적 장애가 있는 레니의 끈끈하지만 영원할 수 없는 동행을 담고 있습니다. 조지와 레니는 서로 의지하고 믿는 둘도 없는 친구로 자신들만의 농장을 꾸리는 것이 꿈이지만, 소일거리로 돈을 모으는 것도, 의도치 않게 문제를 일으키는 레니로 인해 간신히 유지되는 현실을 버티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죠. 작품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때로는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은 소설뿐 아니라 1937년 11월 연극을 시작으로 영화, 드라마 등으로 변주되며 시대를 뛰어넘어 꾸준히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공연을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초연 멤버로 오랜만에 무대에서 만나는 배우 최대훈 씨와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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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지난해 <생쥐와 인간> 이후 처음이에요. 다른 일정들과 겹쳐서 한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는데, 이 작품을 다시 제안 받았을 때 ‘참 좋은 작품이지’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준비하면서도 모든 배우들이 작품성에 대해서는 입을 모을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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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멤버라서 그런지 첫공이 막공처럼 완성도가 높던데, 초연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추가된 장면이 있고, 컬리부인의 비중도 좀 더 커졌어요.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회에서 약자에 속하는데, 이들이 자신의 꿈이나 희망에 대해 관객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부분도 늘었다고 느껴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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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바닥에 깔려 있는 게 뭔가요? 딱딱하지 않아서 움직일 때 힘들 것 같던데요.


맞아요, 격하게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팥이에요. 작년에는 커피콩이었는데 이번에는 팥으로 바뀌었어요. 삶기 전의 팥은 붉은 빛이라 컬리부인과 관련된 특정 장면에서 더 극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초연을 통해 많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크게 힘들지 않은데, 다만 저희가 빨리 움직일 때 튀어서 관객들이 맞을까봐 신경이 쓰여요. 무대는 전체적으로 케이지, 결국 케이지에 갇힌 쥐를 묘사한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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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훈 씨의 레니를 보면서 이른바 ‘인생캐릭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였는데, 표현하기까지는 상당히 어려웠겠죠?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죠. 지적 장애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원문에 적힌 대로 해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시대이고,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도 있을 수 있고, 제 의도와 달리 비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나 제작진도 많이 생각하게 될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레니가 어떤 지점에서 사회의 소수라거나 약한 사람으로 비치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도 ‘조지가 필요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관객들이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힘들었죠. 다행인 건 역사가 80여 년이 된 작품이다 보니 자체에 힘이 있더라고요. 대본에 다 묘사가 돼 있어서, 제가 굳이 캐릭터를 입히지 않아도 그들이 하는 말을 잘만 봐도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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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는 별다른 거부감이나 불편함 없이 관람하는 것 같았습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여러 면에서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레니라는 인물’로 보여야 하니까 힘들겠어요.


그렇죠, 연습 때 제 평소 말투로도 해봤는데 그렇게는 또 잘 안 되더라고요. 작년에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레니를 맡은 배우들이 각자의 아이를 많이 관찰했어요. 대본에 ‘레니는 지적 장애를 갖고 있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는 설명이 돼 있었거든요. 저도 우리 아이 모습을 많이 포착했죠. 예를 들어 웃을 때는 활짝 웃고 울 때는 왕창 울고. 그래서 잘 봐주신 게 아닐까. 아이에게 출연료의 일부를 줘야 할 것 같아요(웃음).


레니 역에 있어 대체 불가한 배우라는 생각이 드는데
최대훈 씨에게는 다른 욕심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힘들 것 같다고, 무슨 얘기인지 영상을 직접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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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들 생각했을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죠. 우리를 찾으러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보이면 저들에게 능욕을 당하느니 내 손으로, 아니면 둘이 잘 도망칠까, 그런데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또 포기할 것 같고. 수없이 갈등했겠죠. 그런데 저라면 못 죽일 것 같아요. 어떻게든 도망가서 같이 살지 않을까.? 이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 제가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죠.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요. 저는 거기까지는 치달아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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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에게 조지는 절대적인 존재잖아요. 현실에서 그런 인물이 있나요?


아내가 좀 서운하겠지만 제 딸이죠(웃음). 아내에게 늘 말하지만 레니처럼 계속 잊는 것 같은데, 아내보다 딸을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이는 우리가 세상에 부른 존재인데 자생력이 아직 없고 보호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다른 의미지만, 저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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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체 연기도 많이 하시는데, 공연과 드라마는 시대나 캐릭터도 다르고, 일하는 환경이나 메커니즘도 달라서 두 공간을 오가는 재미가 있을 듯합니다.


메커니즘은 조금 다르지만 연기라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경계를 나누지는 않고 있어요. 재밌는 차이점은 공연은 결말을 이미 알고 선을 잘 설계할 수 있는 반면, 드라마는 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가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요. 한동안 드라마를 하다 오랜만에 공연을 했더니 ‘같은 감정을 계속 이어간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마음은 닳잖아요. 어떤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밖에 없는데 무대에서는 항상 처음처럼 해야 한다는 게 힘들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다시 태어나면 안 하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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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다른 배우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최대훈 씨가 언급될 때가 있거든요. 연기나 무대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진중하시다고.


솔직히 처음에는 이 일이 놀이였어요. 세상에 이렇게 재밌고 놀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나 싶었는데, 철이 들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소중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됐죠. 지금은 기회가 있지만, 이 기회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되고 잘해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놀 때도 있고, 작품 들어가면서 인물이 이해가 안 될 때는 정말 괴롭고요. 또 요즘 좋은 배우들도 정말 많고, 비전공자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잘해내는 모습을 보면 위기감도 느끼고. 그런데 조금 욕심을 내면 작품에 그대로 묻어나고.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심해서 다시 태어나면 안 하고 싶은데, 생각해 보면 다른 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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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생쥐와 인간>에 나오는 많은 인물이 그 어떤 ‘꿈’을 꾸며 고단한 현실의 스트레스를 버티는데(웃음), 최대훈 씨에게도 항상 힘이 되는 꿈이 있는지요?


제 가족의 안위겠죠. 좀 더 나은 곳에서, 좀 더 좋은 것을 접하면서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지금 저의 보람이고 기쁨이고, 일터에 힘차게 나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욕심이 크게 없어서 ‘우리 가족이 많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힘들지 않고 기뻤으면 좋겠다’가 삶의 목표인 것 같아요. 소박하지만 지키기 힘든 목표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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