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마터 2-10] 49화 : 관동군이 평화의 만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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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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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서 다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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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예인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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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이라니,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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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가 주문을 받으러 왔고 마에다가 음식을 시키기 전에 낮은 소리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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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님들 뭐하는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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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르세요? 경성의 유명한 청춘좌 배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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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먼저 비루를 시켜 마시는데 옆자리의 중년 사내가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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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어디까지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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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까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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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신경까지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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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가 대답을 않고 두 사람을 돌아보았고 일철이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조선말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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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기관수들입니다. 경의선 화물열차를 운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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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의 중년 사내는 조선어로 자기네 좌중의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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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분들 기관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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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서 그는 곧 일철에게로 얼굴을 돌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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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도 기관수가 될 수 있다니 놀랐습니다. 우리는 연극단원들인데 지금 만주 공연차 나섰습니다. 개성에서 공연 마치고 다음은 평양, 그리고 단동, 봉천, 신경, 하얼빈에서 종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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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장황하게 자랑조로 늘어놓았고 일철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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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는 처음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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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걸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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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철이 솔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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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본인 선배들이 정식 기관수고 저는 아직 기관조수입니다. 만주는 가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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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앞으로 기관수가 되시겠지요. 만주는 중국도 일본도 조선도 아닙니다. 뭐랄까 국제적인 장소이지요. 신경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곳은 대단히 모단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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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조선어 대화가 계속되자 야마구치가 일철에게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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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는 거야, 마에다 상에게 실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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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죄송합니다. 이분들은 공연하러 만주까지 간다는 군요. 방금 만주는 국제적인 장소이며 신경은 대단히 현대적인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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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듣고 있던 마에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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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오족협화론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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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려운데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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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가 묻자 마에다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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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한인, 만주인, 몽골인, 조선인이 서로 화합하여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뜻이다. 또한 정착을 원하는 어느 나라 어느 종족의 누구든지 함께 살 수 있다. 물론 앞장서서 끌고 나가는 것은 첫 단계에서 일본이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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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야마구치가 껄껄 웃으면서 일철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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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나? 대일본제국의 관동군이 평화의 만주를 만든다. 철도가 그 선발대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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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음식이 나와서 세 사람은 저절로 대화가 끊겼다. 그러나 일철은 야마구치가 평소에도 냉소적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식사하는 도중에 여객열차가 도착했는지 일본인 극단장과 감독이 단원들을 집합시켰다. 옆자리의 사내가 일어서기 전에 일철에게 광고 지라시 몇 장을 건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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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심심풀이로 읽어 보시구요, 먼 길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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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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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팸플릿은 사진도 있고 여러 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꼼꼼한 인쇄물이었다. 개성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서 삼십 분쯤 기다렸다가 화물열차의 운행을 통보 받고 곧 출발했다. 개성에서 신계까지 일철이 운전대를 잡았고 두 기관수는 휴식했다. 멸악산의 구릉지대를 지나는 곳에서 봉산 지나 황주 거쳐 사리원까지 야마구치가 운전했고 마지막 평양역 진입은 마에다가 맡았다. 마에다는 두 사람이 굴이나 다리를 지날 때마다 지형지물이며 주의할 점들을 이야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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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역에 화물열차가 도착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여기서 급탄 급수를 하고 기관차가 교체될 예정이었다. 그들은 현지 차량계에 일임하고 대기실에서 휴식했다. 야근을 일상적으로 해왔지만 낯선 길을 달려와서인지 피로감이 보통 때보다 더했다. 이일철은 개성에서 악극단 사람들이 주었던 광고 지라시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연극은 ‘개척자’라는 지루해 보이는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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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형제가 있었다. 형이 열두 살 아우가 아홉 살이었다. 그들은 개척지의 어느 읍내에서 구걸을 하며 살아갔다. 해설에 의하면 원작의 배경은 북해도였지만 번안하면서 만주로 바뀌었다. 이들은 물론 일본인이 아니었다. 아마도 일본인 작가가 쓸 때에는 아이누 족이었을 테지만 여기서는 조선인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원작이 조금씩 바뀌었어도 만주에 갖다 놓았는데도 상황이 잘 맞아 떨어졌을 것이다. 원래 일본인이 점령한 땅에 사는 사람들을 토민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만주 사람들도 토민이라고 불렀다. 이전에 북해도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마츠마에 번의 영지로 인정하는 주인장을 발부하면서 일본의 영토로 선포되었다. 물론 이를 원주민 아이누 족과 협의한 바는 없고 어디까지나 일본 막부의 일방적인 선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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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은 사냥과 고기잡이를 하면서 넓은 땅에 흩어져 살았다. 북해도는 척박하고 황량하여 별로 쓸모 없는 있으나마나한 땅에 지나지 않았다. 막부 말기에 북방에서 남하하는 러시아의 세력에 대응하게 되면서 막부는 마츠마에 번으로부터 영지를 국유화했고 현대화를 지향하던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서 서구 제국주의의 본을 받아 북해도 개척에 나선다. 어쨌든 토민에 대한 무자비한 이주 축출이 계속되고 저항과 학살이 이어졌다. 메이지 유신 말기에 패배하여 피신한 막부파의 잔존 세력이 북해도로 들어가 ‘에조공화국’이라는 신생국가를 세워 독립을 시도했지만 얼마 못 가서 토벌 당한다. 만주의 일본 관동군이 본국의 명을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보산 사건과 만주사변을 일으켰다는 소문도 어찌 보면 그럴 듯 했다. 만주국은 북해도가 북방개척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당대의 국수주의적 일본 작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상향 같이 칭송되었다. 일본이 오족협화론이니 뭐니 하며 전 국가적으로 만주국의 국제성과 이상주의를 크게 선전하는 것은 이곳을 기반으로 하여 장차 중국을 억누르고 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해서가 아닌가. 아무튼 형제는 남만주철도국이 설립되고 비공식적으로 만주이민을 권유하던 1920년대에 고향 땅을 떠나 만주로 와서 땅을 분여 받았던 첫 세대 조선 이민자의 자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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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가족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는 자세히 그려지지 않았지만 비적들이 개척마을을 불 지르고 어른들을 마구 살상하여 고아가 되었더라는 식이었다. 아직도 일본 측이 일컫는 비적은 종류가 여럿이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일철도 틈틈이 철도원 교양강좌 시간에 얻어 듣기는 했었다. 중국 군벌들의 수하에 있다가 이탈하거나 잔병이 되어 무리를 이룬 군비, 촌민이 작당한 토비, 말을 타고 무리지어 다니는 마비 즉 마적, 이른바 항일연군으로 중국 만주인과 조선인 항일무장대를 일컫는 공비, 등속이었는데 일본이 그렇게 규정하고 부를 뿐 이들은 거의가 같은 류의 다른 이름들이었다. 이러루한 비적들이 민가를 습격하고 방화 살인하였다지만 대부분이 일본의 앞잡이 민간 무력단체들이거나 민간으로 위장한 토벌대에 의한 유격 근거지의 말살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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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형제는 만주의 개척마을에서 환난을 당하여 고아가 되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남자 아이들 또는 여자 아이들로 변모하며 전해 내려왔다. 남자 아이들은 재간을 팔거나 구걸을 하고 여자 아이들은 꽃을 판다. 일본에서 전해진 신파극들은 먼저 구미의 대중극에서 줄거리를 가져와 저들 사회 상황에 맞게 ‘금색야차’로 각색하고 조선으로 들어오면 이수일과 심순애로 변하여 ‘장한몽’이 되는 식이었다. 사랑보다 돈이 먼저인 세태의 비극을 그렇게 표현한다. 형제의 이야기는 아마도 서양에서 빌린 신파극의 줄거리였을 것이다. 눈먼 아우는 목청이 곱고 노래를 잘하여 장터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린 장님 아우가 둥그렇게 모인 장터의 군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형이 나무그릇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받았다. 어느 날 구경꾼 중에 심보 나쁜 장사치가 어린 아우가 앞을 못 보는 점을 이용하여 짓궂은 장난으로 형제를 이간질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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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너 앞을 못 보는구나. 그러니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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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세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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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가 너희 형의 돈 그릇에 십 원짜리를 넣었거든. 네 형이 떼먹지 않을까 걱정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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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맙습니다. 우리 형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형은 저에게 절대루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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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어디 두고 보렴. 요즘 세상에 돈에는 부모형제두 없다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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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어둠이 내리고 행인의 발길도 끊어질 무렵 형제의 일이 끝나서 형은 아우에게 늘 그러듯이 빠오즈 만두를 사주려 했는데 아우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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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깃국을 먹어두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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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고깃국을 사먹을 돈이 어딨니? 다음 장날에 돈 많이 벌면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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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는 형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않고 평소보다 맛없다는 표정으로 빠오즈의 귀퉁이를 조금씩 떼어 먹기만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아우가 왜 음식 타박까지 하는지 형은 도무지 연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장터의 길거리 음식이든 낯익은 읍내 사람이 내어주는 식은 밥덩이든 형제는 하루에 한두 끼의 배만 채워도 행복했었다. 형제가 늘 잠자리를 삼아온 장터의 빈 좌판 아래에 누웠을 때 형은 아우가 돌아누운 채 훌쩍이며 울고 있는 듯한 기색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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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는 거냐, 너 어디 아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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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아우가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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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이 언제나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라구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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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하러 네게 거짓말을 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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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어떤 사람이 형에게 십 원짜리를 줬다고, 내게 조심하라구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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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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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십 원을 누가 줬다구 그래.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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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돈을 만져라두 보구싶어. 형 그 돈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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